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를 그린 영화 ‘그들만의 리그’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암 수술을 마치고도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대표작 ‘토지’를 악착같이 써내려 가면서 겪었던 삶에 대한 심경을 그 책 서문에 적은 구절이다. 우리에겐 유사한 심경을 느끼게 하는 삶의 기로들이 다가온다. 삶의 목표와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앞에 오는 난관은 육체적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문화적 환경적 장벽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실수를 한 선수가 심한 질책을 받고 울었다. 이 모습을 본 감독이 강하게 말했다. “야구에 울음은 없다!(There is no crying in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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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주요 선수들이 전쟁에 나가는 등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당시 미국 야구계는 팬들의 눈길을 계속 야구에 묶어 두기 위해 여자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여자 선수들은 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한 채 경기에 나서고, 여성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경기했다.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도 야구는 전형적인 남성 스포츠로 인식돼 왔다. 여성들도 1800년대부터 야구를 했지만 여성들은 좀 더 큰 공과 언더핸드 피칭을 하는 소프트볼 쪽으로 주로 진출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신체적으로 연약한 여자는 소프트볼에 어울리고 야구는 남자에게 어울린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미국 스포츠 연구자들은 분석한다. 최근까지도 미국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여자 야구를 하는 선수들은 극소수였고 관련 시설과 제도적 뒷받침도 허약했다.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그 당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뚫고 차별과 무시 속에서도 여자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자신의 성취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정과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더 중시했던 이들이 야구 선수로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눈을 뜨고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는 여성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온갖 사연과 개인적 갈등이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9회말 투아웃 이후 마지막 대결로 압축되는 과정과, 라이벌 선수 간의 충돌이 대폭발하는 결말 부분은 삶 속의 갈등과 투쟁을 숨 막히는 야구 경기에 빗댄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미국 여자프로야구는 전쟁에서 남성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남자 경기에 팬들의 눈길을 뺏기고 수익이 줄어들면서 해체됐다. 그 이후 여자 야구는 오랫동안 더 짙은 그늘 속에 잠겼다. 미국에서 축구 농구 배구 골프 등 소위 메이저 종목 중에서 야구만 여자 프로리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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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