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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늦은 자산을 찾았다”…은 통장 7.9배·실물 바 30배 폭증

입력 | 2026-01-27 12:05:00

“금은 너무 멀고, 예금은 답답해서…” 1년 새 잔액 8배 폭증한 실버뱅킹의 정체. 실물 바는 30배나 팔리고 결국 ‘판매 중단’까지 됐습니다. 지금 개인 투자자들이 은으로 달려가는 진짜 이유를 분석했다. 제미나이 AI 생성 이미지


국제 은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100달러를 넘어선 이후, 개인 투자자의 선택이 다시 갈리고 있다. 금은 이미 너무 멀어졌고, 예금은 답답해졌다는 인식 속에서, 은이 ‘덜 늦은 자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계좌 숫자와 잔액 흐름에서 동시에 확인된다.

이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실버뱅킹이다.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실버뱅킹 상품을 판매하는 신한은행의 은 연동 계좌 잔액은 1월 26일 기준 377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말 477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약 7.9배 이상 불어난 규모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말 잔액이 241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월 들어서만 1300억원 넘는 자금이 쏠렸다.

● 신한은행 계좌가 말해주는 것, ‘자금’보다 ‘사람’

가격 상승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는 계좌 수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신한은행 실버뱅킹 계좌 수는 1월 26일 기준 3만1669개로, 사상 처음 3만 개를 넘어섰다. 2022년 이후 수년간 1만6000개 안팎에 머물던 계좌 수는 지난해 9월 2만1000개를 넘긴 뒤 불과 몇 달 만에 3만 개대로 올라섰다.

잔액이 늘어난 것은 가격 효과일 수 있지만, 계좌 수 증가는 개인 투자자 자체가 유입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실버뱅킹이 통장 형태로 은 가격과 환율에 연동해 투자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은 투자 흐름이 사실상 한 곳으로 집계되고 있다는 점도 상징성이 크다.

● 통장을 넘어 ‘실물’로…실버바 수요 30배 폭증

이 열기는 ‘종이 은’에 그치지 않고 실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신한은행의 실버바 판매량은 2024년 한 해 동안 173kg에 불과했지만, 2025년에는 5130kg으로 급증했다. 1년 만에 약 30배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10월 중순에는 단 하루에만 3000kg 넘는 실버바가 팔려나간 기록도 남아 있다. 이에 신한은행은 10월 20일부로 실버바 판매를 중단했다. 

은행권에서는 이를 단순한 투자 관심이 아니라, 가격 급등 국면에서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는 심리가 실물 수요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해석하고 있다.

● 금은 부담, 예금은 정체…은이 ‘이득처럼’ 보이는 구간

금 가격은 이미 온스당 5000달러 선을 넘보고 있다. 관련 ETF 수익률도 연초 이후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 진입이 ‘추격 매수’처럼 느껴질 수 있는 구간이다. 반면 은은 최근 급등했지만, 절대 가격과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은은 안전자산이라기보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귀금속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예금과의 대비도 뚜렷하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2%대에 머무는 상황에서, 가격이 고정된 자산보다 변동성이 있는 자산을 택해 기회를 노리겠다는 심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RP나 예금으로 묶어두느니, 차라리 은으로 가겠다”는 반응도 잇따르고 있다.

안전인가, 조급함인가? 은(Silver) 시장의 과열. 국제 은값 100달러 돌파 이후, 신한은행 은 계좌가 3만 개를 넘어섰다. 게티이미지뱅크

● “은, 200달러 간다”는 말이 만든 심리적 촉매

이 같은 흐름에 불을 붙인 건 유명 투자자의 발언이다.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최근 X(옛 트위터)에서 은 가격이 향후 온스당 20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을 산업혁명 시대의 철에 비유하며, 산업용 금속이자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역할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목표 가격이라기보다, 개인 투자자의 판단을 자극하는 ‘심리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가격 급등 국면에서 유명인의 전망이 더해지며, 계좌 개설과 신규 진입을 밀어붙이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전문가 “은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변동성 자산”

전문가들은 은에 쏠리는 자금 흐름을 경계한다. 은은 금과 달리 산업 수요 비중이 크고, 투기적 자금의 유입과 이탈이 빠르다. 오를 때는 급등하지만, 조정 국면에서는 낙폭도 크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실버뱅킹은 은 가격과 환율에 연동되는 구조인 만큼, 단기 수익보다 리스크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은은 금보다 가격 변동성이 훨씬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실버뱅킹 상품의 잔액과 계좌 수는 오히려 역대 최대 폭으로 늘고 있다”며 “작년 초부터 이어진 대체자산에 대한 관심과 화폐가치 하락에 대응하려는 수요, 산업재 수요 확대에 따른 은 가격 상승이 투자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는 6월 미국과 한국의 정치 일정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추가 상승 여지가 거론되지만, 은 가격은 변동성이 큰 만큼 추가 매수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안전이 아니라 ‘덜 늦은 선택’

신한은행 계좌와 실버바 판매량이 동시에 급증하는 현상은 단순한 안전자산 이동이라기보다, 개인 투자자의 계산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금은 이미 너무 올라 부담스럽고, 예금은 수익이 정체돼 있으며, 은은 아직 ‘이득일 수 있다’는 위치에 서 있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 자금은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라, 가장 늦지 않아 보이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은을 고르는 순간, 개인은 안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산다. 지금 신한은행 계좌와 실물 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귀금속 열풍이 아니라, 지갑이 시장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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