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인공혈액의 길 여는 아트블러드 피 부족해 수술 미루는 참담한 현실… 20년 목격한 대학병원 의사가 창업 인구 감소로 헌혈만으론 공급 한계… 세포주 기반 인공 적혈구 제조 성공 세계서 유일하게 정상 세포로 해내… 면역학적 부작용-감염 위험도 없어
백은정 아트블러드 대표이사(한양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가 13일 서울 서초구 연구소에서 한창 성장 중인 적혈구가 담긴 용기를 가리키며 세포주 기반 인공 적혈구 생산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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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혈액이 한 팩밖에 없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때 수술 환자가 발생하면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백은정 아트블러드 대표이사(49)는 한양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로 수혈의학 전문의다. 20년째 대학병원 의사인 그가 지금도 매일 목격하는 현장은 참담하다. 환자에게 수혈할 혈액이 부족해 수술이 연기되고, 외부에서 오는 응급환자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2차병원 외과 의사가 절박하게 전화로 피를 구걸하기도 한다. 위법이어서 개별적으로 피를 나눠줄 수도 없다. 혈액형을 파악하지 못하는 긴급 상황에서는 항원항체반응이 생기지 않는 만능공여형 혈액인 Rh-O형 피를 써야 하지만 한국에서 이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0.3%에 불과하다. 만능공여형 혈액을 갖춰 둔다는 건 꿈 같은 얘기다. 우리나라 혈액 보유량은 평균 4.2일로 권장 기준인 5일분에도 못 미친다. 헌혈자는 계속 줄고 있다.
13일 서울 서초구 아트블러드 연구소에서 만난 백 대표는 “피가 부족해서 규모가 있는 병원은 수혈관리실을 설치하고 전담 인력까지 두도록 법제화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라며 “저출산으로 헌혈 가능자는 줄고 고령화로 수혈 수요는 폭증하는 구조여서 인공혈액 상용화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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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블러드가 개발한 핵심 기술은 세포주 기반 인공적혈구 대량생산이다. 조혈모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도입하여 계속 증식할 수 있는 세포주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세포주는 살아 있는 사람의 골수 속 조혈모세포처럼 장시간 증식하며, 한 번 확립되면 세포 배양 시설에서 적혈구를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 도전하는 곳은 영국 스칼렛과 미국 서필, 한국 아트블러드 세 곳뿐이다. 그중에서도 아트블러드만이 정상 염색체를 가진 적혈구 생산용 세포주를 확립했다. 스칼렛은 암세포 기반 세포주라 일반 수혈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서필은 유도만능줄기세포 기반이어서 성인과 다른 배아형 혈색소가 생성돼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진다.
백 대표는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계속 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적혈구 전구세포 단계에서 계속 증식을 할 수 있고, 원할 때 분화시킬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상 세포로 이걸 해낸 것이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아트블러드의 50L 바이오리액터. 왼쪽 원통형 기구 안에서 적혈구가 생산된다. 아트블러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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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블러드는 반려견용 적혈구 개발도 진행 중이다. 사실 사람의 인공혈액을 상용화하려면 임상과 비슷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동물 혈액으로 먼저 검증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반려견 혈액은 사람 혈액보다 구하기가 더 힘든 현실적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목적도 있다. 백 대표는 “우리 기술로 반려견 혈액을 만들어 사고 없이 수혈이 된다면, 사람에게도 안전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 오랜 창업 준비와 난관들
백 대표의 인공혈액 연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세대학교 진단검사의학과 김현욱 교수 연구실에서 펠로우로 근무하던 그는 조혈모세포에서 적혈구를 체외 배양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논문을 접했다. 백 대표는 “전임자가 한 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제가 남아있는 시약으로 다시 해 봤더니 재현이 가능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고 했다.
세계에서 관련 논문이 단 2편밖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다. 백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수혈학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20년간 논문 40여 편을 국제 저명 학술지에 게재하고 국내외 특허 30여 건을 확보했다.
하지만 실험실의 성공과 혈액 생산은 차원이 달랐다. 2013년부터 백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약 개발 강의를 찾아다니며 들었는데, 만난 기업인들의 조언은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은 사업화하지 않으면 절대 실현될 수 없다’. 5년간 낮에는 교수로, 밤에는 창업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이중생활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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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임상시험을 위한 동물 모델이 없었다. 개발하려는 것이 혈액이기 때문이다. 쥐와 사람의 혈액형이 달라 쥐에게 투여하면 바로 파괴되기 때문이다. 비임상-임상 시험 과정 자체도 따라 수립해야하는 것이다. 정제 공정도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백 대표는 “필요한 기술들이 세상의 첫 시도여서 여러 단계마다 효율 개선이 필요하다.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했다.
법적으로 혈액은 인체에서 채혈한 혈구 및 혈장이어서 인공혈액은 기존 법규를 적용할 수 없었다. 2025년 8월에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공혈액을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분류했다. 임상시험의 길을 열었다.
●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을 인공혈액
2023년 정부는 복지부·과기부·산업부·식약처·질병청이 참여하는 ‘세포기반 인공혈액 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5년간 471억 원을 투입하는 1단계 사업이다. 아트블러드는 사람에게 수혈하는 적혈구 제제를 대량생산하는 핵심 과제를 단독 수주했다. 같은 해 차세대 유망 초기(seed) 기술 실용화 패스트트랙 사업 과제를 수주해 개에게 수혈할 수 있는 적혈구를 세계 최초로 생산하는 데도 성공했다.
아트블러드에는 임직원 33명(연구개발 인력 26명)이 연구와 생산을 맡고 있다. 세계 최초의 도전에 각계 전문가들이 모였다. 강스템바이오텍 출신 노경환 바이오 분야 최고기술책임자(CTbO),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 김선규 세포라인 분야 최고기술책임자(CTcO), CJ헬스케어 출신 정영미 최고개발책임자(CDO), LG화학 출신 유수현 최고제품책임자(CPO) 등이 합류해 있다. 경기 안산에 공장(GMP인증시설) 부지를 확보했고, 서울 서초구에 6∼7층 규모 부설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아트블러드는 작년 8월 경기 안산시 청년창업펀드 3호 투자기업으로 선정돼 본사를 안산으로 이전했다. 아트블러드 제공
아트블러드는 글로벌 수혈용 혈액 시장은 2022년 370억 달러(약 47조 원)에서 2030년 545억 달러(약 70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적혈구제제 시장은 전체의 약 50%를 차지한다. 백 대표는 인류의 혈액 부족을 인공혈액 기술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으로 본다.
백 대표는 “응급실에 만능공여형 혈액을 배치해 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술이 피가 없어서 지연되는 일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