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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세 살에 이미 작곡을 했고, 다섯 살에 유럽을 순회한 모차르트. 그가 신이 내려준 재능을 평생 낭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서사는 너무나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조차 하지 않게 된다. 천재라는 단어 하나면 모든 설명이 끝난다. 그의 음악이 왜 그렇게 들리는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갈망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천재라는 말은 이해의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감탄만 남기고, 해석은 생략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의 음악 앞에서 놀라워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소비되는 순간, 모차르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음악가가 아니라, 음악사 교과서 속에 고정된 이미지가 된다. 인간으로서의 시간, 선택, 흔들림은 지워지고, 오직 성공한 결과만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모차르트를 너무 빨리 정의해버린 대가로, 그가 실제로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들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모차르트를 가장 멀리서 바라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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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남긴 편지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작곡가의 얼굴은 자주 흐트러진다. 특히 누나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음악 교과서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감정들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누나에게 장난스럽고 유치한 말들을 쏟아내다가도, 어느 순간엔 공연이 잘 풀리지 않는 불안을 털어놓고, 자신의 음악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을 토로한다. 천재의 모습이라기보다, 먹고사는 예술가의 모습에 가깝다.
이 편지들 속의 모차르트는 늘 흔들린다. 아버지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빈에서 누릴 수 있었던 예술적 자유와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균형을 잃는다. 사랑을 선택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선택이 불러올 책임을 두려워했고, 독립을 꿈꾸면서도 보호받던 시절을 완전히 떠나지 못했다. 편지의 문장들에는 자신감과 불안이 뒤섞여 있고, 확신에 찬 말 뒤에는 곧바로 자기 의심이 따라붙는다.
우리는 종종 그를 너무 일찍 완성된 존재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이미 모든 것을 성취했고, 이후의 삶은 그 재능을 반복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편지 속의 모차르트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끝까지 스스로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간 인물에 가깝다. 어느 도시에 속해야 하는지, 어떤 음악을 써야 하는지, 누구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늘 질문했다.
이 인간적인 흔들림은 음악 안에서도 분명하게 들린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환상곡 d단조 K.397이다. 이 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낯설다. 형식은 불안정하고, 생각은 도중에 끊기며, 결말조차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듣는 밝은 종결부조차 모차르트의 손을 떠난 뒤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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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를 천재로만 기억하는 것은 안전하다. 감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모차르트를 마주하는 일은 다르다. 그에게서 불안을 발견하고, 미완성을 듣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견뎌야 한다. 그 대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음악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그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270주년은 모차르트를 다시 생각할 기회다. 하늘에서 떨어진 신동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모차르트. 그를 그렇게 다시 듣는 순간, 모차르트의 음악이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 곁에서 함께 걷는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된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