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인천의 한 공원에서 만난 커플. 한 차로 같이 왔지만 사진 촬영만큼은 각자 따로 하고 있었다. 사진은 ‘나만의 작업’이란 것을 잘 보여준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신원건 사진부 기자
누구나 사진작가인 시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두가 작가다. 쉽게 찍고 쉽게 공개하고 유통한다. 지금 우리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언제든지 ‘데뷔’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내가 좋아서 찍는 것인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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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년)에 등장한 지인들은 작가에 대해 비밀스러운 성격이었다고 증언한다. 사진과 필름을 창고에 꼭꼭 숨겨 두었다. 아이들을 살갑게 돌보는 직업 보모이기도 했지만, 괴팍하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인물로 기억한다. 누구나 밝고 쾌활한 면과 어두운 성격을 함께 지니듯, 마이어도 복합적인 인격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마이어의 자화상은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날것 그대로 그저 카메라에 담아둔 듯한 느낌을 준다. 무표정한 얼굴과 밋밋한 몸동작. 자아도취도, 자기혐오도 없이 담담하게 자신을 찍었다. 결국 마이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피사체는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사진은 외부 세계와 자신을 잇는 소통 도구이자,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거울이었던 셈이다. 창작자인 동시에 유일한 관람객이었다. 이것으로 충분히 만족했기에 사진을 공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카메라를 메고 있을 때를 ‘가장 나다운 순간’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강렬한 감정을 ‘경외감(awe)’이라고 불렀다. 웅장한 자연이나 위대한 예술품을 보며 압도당하는 감정이다.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큰 존재 앞에서 느껴지는 겸허함과 연결감. 매슬로는 이 감정이 자기 초월, 즉 ‘나’를 넘어 타인과 세계를 포용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카메라는 이 경외감을 일상 속으로 불러들이는 데 유용한 도구다. 사진을 최고의 취미 활동으로 꼽는 이유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사진가는 모든 것을 멈춰 세우고 집중해야 한다. 마치 명상을 하듯 ‘나’라는 존재를 잊고 촬영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때는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인정 욕구나 원망 같은 집착이 사르르 사라지며 스스로를 존중하게 되고 타인과 자연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이렇게 몰아의 경지에서 잡은 이미지는 다른 이에게 보여주며 소통해도 좋고, 나 혼자만 간직해도 좋다. 촬영 순간의 기억까지 어우러지며 온전히 ‘내 사진’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마음속에 겸허한 스토리로 각인된다. 촬영지 여행의 설렘과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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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건 사진부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