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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조작’ 추락 기업이 다시 중국 1위로…루이싱커피 부활기[딥다이브]

입력 | 2025-12-20 10:00:00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중국판 스타벅스’ 신화에서 ‘사기 기업’으로 추락했던 루이싱커피(瑞幸, Luckin Coffee). 나스닥 상장폐지, 거액의 벌금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요.

하지만 기사회생에 성공한 루이싱커피는 이미 중국 시장에서 스타벅스마저 제쳤고요. 이젠 나스닥 재상장을 추진한다며 블루보틀 인수설까지 나옵니다. 지난 5년 동안 이 기업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루이싱커피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싱커피. 사기기업으로 낙인 찍혀 추락했는데, 어떻게 안 망하고 돌아왔을까. 루이싱커피 제공

*이 기사는 12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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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절반이 가짜였다
“루이싱커피는 실적을 조작한 사기 기업이다. 매장 주문량은 최소 88% 부풀려졌다.”

2020년 1월, 공매도 전문 투자회사 머디워터스 리서치의 89페이지짜리 보고서가 시장을 뒤흔듭니다. 창업 18개월 만인 2019년 5월 나스닥에 상장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었던 루이싱커피. 놀라운 주가 상승률로 전 세계 투자자들을 열광케 했던 기업의 실체가 까발려진 거죠.

그해 4월 루이싱커피가 발표한 자체 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2019년 2~4분기 조작된 매출이 무려 22억 위안(약 4600억원). 공시한 매출의 절반이 가짜였습니다. 창업자 루정야오 회장 본인과 친척 소유 기업들이 거액의 커피 상품권을 구매한 것처럼 거래를 조작했던 거죠. 주가를 띄우기 위해서요.

2019년 5월 17일 루이싱커피의 나스닥 상장을 알리는 전광판의 모습. 루이싱커피 제공

하루 만에 주가가 75% 급락했고, 시총 약 50억 달러(7.4조원)가 사라집니다.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고요. 결국 2020년 6월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됐죠. 한때 51.83달러를 찍었던 주가는 거래 마지막 날 1.38달러였습니다. 그해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루이싱커피에 1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루이싱커피의 현재 상황을 살펴볼까요.

-2020년 4000여 개였던 중국 매장 수는 이제 2만9096개로 늘었습니다. 이미 2023년 중국 내 매장 수는 물론 매출로도 스타벅스를 제쳤고요. 중국에선 단연 1위 커피전문점입니다.

-2020년 40억 위안(약 8400억원)이었던 매출은 올해 500억 위안(10.5조원) 돌파가 예상됩니다. 전년 대비 약 50% 성장입니다.

-2023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홍콩에도 진출했고요. 올해 6월엔 맨해튼 한복판에도 매장을 내며 뉴욕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부활했는데요. 신뢰를 잃고 사기 기업으로 손가락질당했던 루이싱커피. 이젠 ‘기사회생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루이싱커피의 분기별 전 세계 매장 수 추이. 1년 전보다 7871개 늘었다. 전체 매장 중 직영점이 약 3분의 2,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루이싱커피 제공



이름만 빼고 다 바꾼 기업
완전히 망가진 기업은 어떻게 재탄생할 수 있을까요. 사기 스캔들 이후 루이싱커피 경영을 이끈 건 창업멤버이자 전 제품 담당 부사장이었던 궈진이(郭謹一) CEO인데요. 그는 “진상 규명과 지배구조 개혁”이 재건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우선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한 특별위원회가 대대적인 진상조사를 벌였고요. 회계 부정을 주도한 창업자 루정야오 전 회장과 첸즈야 전 CEO는 곧바로 이사회에서 축출됐습니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팀 전원도 ‘영구 제명’됐고요. 행여 이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사기를 저지른 전 경영진은 주식 의결권을 가질 수 없다’라고 정관에 명시하기까지 했죠. 과거와 완전히 선을 그은 겁니다.

중국 베이징의 루이싱커피 매장의 모습. 루이싱커피 제공

새로운 최대 주주로 올라선 건 중국 사모펀드 센추리움캐피탈.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불투명한 가족 기업 체제에선 벗어나게 됐는데요. 이렇게 파산 위기는 간신히 넘겼지만, 사기가 땅에 떨어진 직원들을 다시 뭉치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궈진이 CEO는 이걸 기업문화에서 찾았죠.

“스캔들 이전, 루이싱엔 명확한 사명이나 가치관이 없었어요. 그런 걸 논의해본 적도 없었죠. 10만명 넘는 직원이 같은 목표를 나아가게 할 원동력은 무엇일까. 해답은 기업문화에 있었어요. 우린 사명과 핵심 가치를 재정의했고요. 부서 간 장벽을 허물었죠.”

‘행운의 순간을 창조하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열정을 고취한다’라는 기업 사명이 새로 생겨났고요. ‘진실 추구와 실용주의’가 기업 핵심 가치가 됩니다. 예전엔 제품개발, 마케팅, 매장 운영 부서가 각각 따로 일했고, 서로 정보 공유도 되지 않았는데요. 이젠 모든 재무·운영 데이터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유됩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다른 기업보다 일부러 더 과도할 정도로 투명성을 강조한 거죠.



커피를 판다? 트렌드를 판다!
1999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 커피 시장을 개척한 미국 스타벅스. 2020년대 초반까지 여전히 스타벅스의 벽은 높았습니다. 주요 상권의 가장 좋은 입지를 차지한 데다, 브랜드 면에서도 강력했으니까요. 궈진이 CEO는 스타벅스와 경쟁하기 위해선 스타벅스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써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른바 ‘코카콜라 전략’이죠.

“코카콜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부터 청소부까지 모두가 마십니다. 아무도 코카콜라를 저가 브랜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국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선 수익성이 높으면 반드시 도전받게 됩니다. 만약 루이싱이 컵당 5위안을 벌면, 3위안만 버는 경쟁사가 진입하겠죠. 하지만 우리가 컵당 3위안만 남긴다면 신규 진입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코카콜라 전략입니다. 코카콜라는 병당 3위안에 판매하는데, 신규 브랜드는 이 가격을 따라갈 수 없죠.”

루이싱커피는 고객이 모바일 앱으로 커피를 주문하게 한다. 미리 모바일 주문을 한 뒤 매장에 잠깐 들러서 픽업해가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매장 좌석을 줄여서 임대료를 아끼기 위해 고안한 전략이다. 사진은 싱가포르 루이싱커피 앱의 이용 모습. 루이싱커피 제공

루이싱커피는 2017년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저렴한 가격과 ‘첫 잔 무료’ 같은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승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성비 전략을 이어가죠. 효율성을 높인 모바일 앱 주문과 테이크아웃 위주 매장으로 비용을 줄인 덕분에 가능하다는데요. 루이싱커피 앱에선 여전히 각종 할인과 프로모션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여기엔 중국 커피 시장이 지금보다 열배, 스무배로 커질 거란 믿음도 깔려있습니다. “중국 소비자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평균 10잔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2023년 기준 16.7잔). 선진국은 100~200잔 수준이죠(한국은 2023년 기준 405잔). 중국 커피 산업은 고속 성장 궤도에 올라왔고, 앞으로 최소 10년은 성장 기회가 존재합니다.”

루이싱커피는 커피 맛으로 승부하는 브랜드는 아닙니다. 그리고 중국 소비자는 아직 커피 맛을 잘 모르거나 커피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많죠. 루이싱커피는 이들을 겨냥해 물량공세로 승부합니다. 매년 100개 넘는 신메뉴를 쏟아내고 있죠(2021년 113, 2022년 140, 2023년 102, 2024년 119개 메뉴 출시).

마오타이주를 넣은 ‘마오타이 라떼’ 같은 콜라보(협업) 제품이 큰 화제가 됐고요. 벨벳라떼, 오렌지C아메리카노, 애플 피지 아메리카노 등 창의적인 베스트셀러 음료가 탄생했죠. 중국 소비자가 카페에 가는 건 커피 맛보다는 트렌디함 때문이란 걸 간파한 결과입니다. 사실상 커피시장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죠.

루이싱커피는 1년에 100개 넘는 신메뉴를 선보이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2021년 첫선을 보인 코코넛 라떼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지금도 루이싱커피 매출을 견인 중이다. 루이싱커피 제공

특히 2021년 선보인 코코넛라떼는 ‘루이싱을 구했다’는 평을 받는 메뉴인데요. 중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 귀리우유 대신 달달한 코코넛 밀크를 넣어 비건 메뉴로 개발했고요. 하루 200만 잔, 누적으로 17억 잔이 팔릴 정도로 대히트를 쳤습니다.



가격전쟁과 뉴욕 상륙
2023년 중국 내 매장 수와 매출에서 모두 스타벅스를 추월하며 선두로 올라선 루이싱커피.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경쟁자가 등장합니다. 2022년 10월 설립된 쿠디(庫迪·Cotti) 커피. 매장의 3분의 2가 직영점인 루이싱커피와 달리 100%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한 커피체인이었는데요.

그 창업자는 루정야오와 첸즈야. 바로 2020년 회계부정으로 루이싱에서 쫓겨난 전 경영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일종의 ‘복수전’에 나선 셈이었죠.

중국 시장에서 무섭게 확장 중인 커피체인 쿠디커피. 과거 루이싱커피의 회계부정을 주도한 루정야오 전 회장이 루이싱을 꺾겠다며 만든 기업이다. 매우 공격적인 가격할인 전략을 펼치며 중국 커피 시장을 가격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쿠디커피 제공

쿠디커피는 ‘가맹비 제로’와 보조금 지급을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매장을 늘려 나갑니다. 루이싱커피 매장 바로 옆에 쿠디커피 매장이 속속 들어섰죠. 쿠디의 가장 큰 무기는 뭐니 뭐니 해도 가격. 초반부터 ‘1000개 매장 커피 축제’를 열고 70여종 제품을 9.9위안(약 2000원) 할인판매하는 프로모션을 펼칩니다.

루이싱커피도 가만히 있진 않았죠. 2023년 ‘만개 매장 동시 축하’ 행사를 열고 모든 매장에 9.9위안짜리 할인 쿠폰을 뿌리며 반격했는데요. 이를 기점으로 중국 커피 업계 전체가 치열한 가격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됩니다. 특히 쿠디커피는 주요 제품 가격을 8.8 위안, 4.8위안, 때론 1위안대까지 낮추는 프로모션까지 잇달아 선보이며 총공세에 나섰죠.

6월 말 현재 쿠디커피 매장 수는 약 1만5000개. 중국 커피 브랜드 중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루이싱커피는 자기와 너무나 비슷한 경쟁상대와 맞붙게 된 거죠.

2년 넘게 이어진 이 치열한 가격 경쟁은 루이싱커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3분기 실적을 보면 회사 전체 영업이익률(15.5→11.6%), 직영점 1곳당 마진율(23.5→17.5%) 모두 하락세입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매장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전환점이 찾아오고 있는 거죠.

뉴욕 브로드웨이에 올해 개점한 루이싱커피 매장 모습. 루이싱커피 제공

바로 그게 루이싱이 해외 진출 속도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현재 해외 매장 수는 100곳 남짓. 뉴욕의 경우, 올해 6월 처음 매장을 연 뒤 벌써 9개로 늘렸는데요. ‘첫 모바일 주문 시 1.99달러’ 같은 이벤트와 미국엔 없던 새로운 메뉴로 뉴요커를 공략 중이죠.

루이싱커피 궈진이 CEO는 지난달 눈길을 끄는 발표도 내놨습니다. “미국 나스닥 메인보드 재상장을 추진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데요. 금융사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루이싱이 다시 나스닥에? 결코 쉽지 않을 텐데요. 3만개에 육박하는 매장 수와 10조원 넘는 연 매출을 보면 불가능하진 않을지 모르죠. 최근엔 루이싱커피가 네슬레 소유의 고급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인수를 검토 중이란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 역시 나스닥 재상장을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죠.

미국 스타벅스조차 두 손 들고 경영권을 매각하게 만든 치열한 중국 커피시장. 루이싱커피는 지금의 선두 지위를 지키고, 쿠디커피의 맹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요. 알 순 없지만 일단은 무조건 전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한국 커피시장에서도 요즘 저가커피 브랜드가 판을 뒤흔들고 있죠. 결국 가성비를 이길 전략이란 없는 걸까요. 모두가 ‘코카콜라 전략’을 쓴다면 과연 누가 승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2020년 나스닥을 뒤흔든 회계부정 사기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루이싱커피. 모두가 망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죽지 않고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어느덧 매장 수가 3만개에 육박하죠.

-스캔들 직후 부정행위 가담자와 연을 끊고 지배구조를 바꿔 기업을 재탄생시켰습니다. 기업의 핵심가치는 ‘진실 추구’가 됐죠.

-가성비가 중심이 되는 ‘코카콜라 전략’은 루이싱커피의 가장 큰 무기이죠. 매년 100개 넘는 신메뉴를 쏟아내는 물량공세를 펼치며 스스로 소비트렌드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루이싱커피 전 경영진이 만든 쿠디커피의 등장으로 중국 커피 시장은 치열한 가격전쟁 소용돌이에 빠졌는데요. 나스닥 재상장으로 이를 뚫고 나가려 하는 루이싱커피. 한번 신뢰를 잃은 기업을 시장이 다시 받아줄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2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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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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