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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홍진환]현대판 ‘귀족의 가면’, 워싱턴에 번지는 ‘마러라고 얼굴’

입력 | 2025-12-03 23:09:00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장관, 킴벌리 길포일 주그리스 미국대사,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 AP 뉴시스


홍진환 사진부 차장

정치인의 외형은 보도사진에서 뉴스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사진기자들은 카메라에 포착된 이들의 표정, 자세, 미세한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변 정치인들의 사진에서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이 포착됐다. 벌침에 쏘인 듯한 입술, 과하게 부푼 볼, 주름 없이 매끈하고 도드라진 이마 등이다.

미국 언론은 공화당 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시끌벅적한 외모의 변화’를 두고 ‘마러라고 페이스(Mar-a-Lago face)’라 부르며 관련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마러라고 페이스는 공화당 내 보수파 인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성형수술과 뷰티 트렌드를 일컫는다. 입술 확장, 보톡스, 필러, 턱 윤곽 등 성형 시술과 함께 짙은 화장과 구릿빛 태닝, 과한 인조 속눈썹 등의 메이크업 스타일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이 용어는 트럼프 소유의 플로리다 팜비치 리조트 ‘마러라고’에서 유래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바비 인형’이란 별명을 얻은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이 꼽힌다. 최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추수감사절 행사에 검은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논란을 일으킨 킴벌리 길포일 주그리스 미국대사, 스스로를 ‘트럼프의 비공식 고문’이라고 칭한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 역시 마러라고 페이스 범주에 포함된다.

이 같은 흐름은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남성 정치인들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은 더 젊고 강인해 보이려고 보톡스나 눈꺼풀 시술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탄탄하고 도드라진 턱선을 갖기 위해 각종 성형 시술을 받는다. 강한 턱을 권위, 신뢰, 리더십, 정직함과 연결짓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마러라고 페이스 성형의 대표적 사례로는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트럼프 2기 초대 법무장관으로 지명됐다가 사퇴)이 꼽힌다. 정기적으로 보톡스 시술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빼놓을 수 없다.

마가 진영 엘리트 정치인들의 외모 변화는 정치권을 넘어 20, 30대 젊은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러와 보톡스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미국성형외과학회(ASP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시행된 최소침습시술은 2850만 건을 넘겼다. 입술 확장, 피부 필러, 보톡스 시술 등은 인기 시술 상위 5위 안에 꾸준히 들었다. 워싱턴 지역 성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젊은 환자들이 오히려 인공적인 느낌을 더 선호한다”는 말도 나온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트럼프 주변 인사들과 마가 진영 사이에서 ‘과감할수록 좋다’는 트럼프식 미적 기준에 맞춘 시술이 급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백악관 집무실을 황금빛 갤러리처럼 꾸미고, 새로 지을 대연회장 역시 황금빛으로 연출하려는 트럼프의 이른바 ‘요란한 럭셔리(foghorn luxury)’ 스타일이 이러한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자연스럽고 과한 외모를 과시하는게 일종의 정치적 충성 신호로 해석되면서 시술 사실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더 눈에 띌 정도로 과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측근들의 외모 변화를 두고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의 연장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독일의 미술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론야 메르켈은 한 매체 기고에서 “인위적으로 보일지언정 이 같은 뷰티 트렌드는 미국의 미적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선언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가혹하고 배타적인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누구나 젊어 보이고 호감을 얻고 싶어 한다. 특정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은 더욱 그럴 것이다. 워싱턴 지역의 성형외과 전문의인 켈리 볼든은 한 인터뷰에서 “필러로 채운 것은 다 사라지고, 모든 것에는 제한된 수명이 있다”면서 “마러라고 스타일 시술로 완성한 얼굴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

트럼프 시대, 워싱턴 정가에 붐처럼 번지고 있는 ‘마러라고 얼굴’도 예외일 수 없다. 유행도, 권력도, 때가 되면 바뀌기 마련이다. 결국 정치인의 진정한 자산은 일시적인 시술로 얻은 외모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능력과 이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서 나온다.



홍진환 사진부 차장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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