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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의 이름을 딴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1876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약국에서 시작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대령 출신 약사 일라이 릴리가 약을 제조하는 실험실을 갖추고 가짜 약이 판치던 시기에 ‘화학자가 만든 약’이라며 말라리아, 매독 치료제를 팔았다. 그렇게 출발한 이 회사가 최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기며 제약 산업의 역사를 다시 썼다. ‘빅테크’와 겨루는 ‘빅파마(Big Pharma)’로 성장한 것이다.
▷일라이 릴리 주가는 올해 들어 42% 급등했다. 당뇨 치료제 ‘마운자로’, 똑같은 성분이지만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은 ‘젭바운드’의 폭발적 성장세 덕분이다. 미국 상장 기업 가운데 시총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은 10곳뿐이다. 1∼8위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가 차지하고 있다. 빅테크가 아닌데 1조 달러 클럽에 입성한 기업으로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가 하면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 6곳의 시총을 모두 합쳐도 1조 달러에 못 미친다.
▷제약 산업은 테크 산업처럼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일단 시장 규모가 작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많다. 감염병 유행 등 약의 수요에도 부침이 크다. 일라이 릴리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페니실린 대량 생산으로 급성장했다가 종전 이후에는 수요 급감으로 고전했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10년 남짓이다. ‘기적의 항우울제’로 불리던 프로작이 2001년 특허가 만료되자 일라이 릴리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규제나 약값 정책의 영향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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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면 세계 비만 인구가 19억 명이 넘고 비만약 매출이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프지 않아도 먹는 약’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새로 창출된 것이다. 일라이 릴리는 프로작, 자이프렉사 등의 특허 만료로 휘청였을 당시 오히려 신약 개발에 몰두했고 지금 그 성과를 누리고 있다. 비만약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빅파마’가 탄생하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길 기대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