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히로니뮈스 보스
히로니뮈스 보스의 ‘그리스도의 체포’(1515년경)샌디에이고 미술관 제공 ⓒThe San Diego Museum of Art
높이가 220cm이며 문을 열면 폭 4m가 넘는 이 작품 속에는 인간의 쾌락과 타락을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나체의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큰 과일에 달라붙어 그것을 먹고 있거나, 타락한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한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 등 기괴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해 프라도미술관에서 늘 관객이 붐비는 작품 중 하나다.
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인된 작품은 전 세계에 25점뿐이다. 15,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조수들과 함께 많은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가톨릭 성당에 있던 조각, 제단화가 대거 파괴되었는데 이 때 보스의 그림도 함께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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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화려한 복장을 한 로마 병사가 단검을 꺼내 들고 있으며, 이를 본 베드로가 단검을 들어 저항하려 하고 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그의 바로 옆에서 곁눈질을 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다.
예수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예수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수의 바로 옆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얼굴에 따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배신을 당하고 체포되는 고통보다, 유다를 용서하고 초연한 감정을 대조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멀리서 전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넓은 시야에서 그린 ‘환락의 땅’과 비교하면, 인물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로 가져와 그린 이 작품은 보스의 감정 표현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
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실히 확인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작품인 이 그림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다. 또한 약 500년 전에 그려진 작품으로 유럽으로 직접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근대 이전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눈 여겨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