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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공개된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판정문에는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는 문구가 6번 나온다.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론스타는 단순한 ‘먹튀(Eat and Run)’가 아니라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란 취지다. 하지만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 정부 역시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보류했다며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의 4.6%인 32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불복했고 ICSID는 18일 판정을 뒤집어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를 사들이며 시작됐다. “외환은행을 세계적 은행으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던 론스타는 주가가 오르자 3년 만에 HSBC에 은행을 매각하겠다고 나서 ‘먹튀’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헐값 매각 및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관계자들을 기소했고, 금융 당국은 “재판 진행 중”이란 이유로 매각 승인을 미뤘다. 모든 재판이 마무리된 2012년에야 론스타는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팔고 철수하며 4조7000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론스타는 9년 만에 300%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철수 직후 “매각이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ISD를 제기한 것이다. 청구액은 ISD 사상 최대인 6조9000억 원이었다. 이후 13년 동안 소송전이 이어졌다. ICSID는 이번에 원판정을 뒤집으며 ‘절차상 하자’를 주요 이유로 들었다. 원판정이 한국 정부와 무관한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판정문을 결정적 근거로 삼으면서 한국 측의 변론권과 반대신문권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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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이번 승소로 취소 소송 비용 73억 원을 론스타로부터 받게 됐다. 하지만 원판정 때 국민 세금으로 지출한 변호사 비용 478억 원은 돌려받을 길이 요원하다. 금융 당국이 투기자본의 속성을 간파하지 못해 막대한 국부가 유출된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낯 뜨거운 공 다툼을 할 게 아니라, 론스타가 예고한 새 중재재판과 남은 ISD 6건에서 승소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