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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종이 위에 오직 두 손만이 그려져 있다. 검은 잉크와 펜으로 그려진 단정히 모은 손. 마디는 거칠고, 소매는 살짝 걷혀 있다. 모델의 얼굴도 배경도 없지만, 그 안엔 간절함이 묻어난다. 대체 누구의 손이고, 무엇을 위해 이토록 비는 것일까.
‘기도하는 손’(1508년·사진)은 독일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남긴 드로잉이다. 본래는 프랑크푸르트의 한 교회 제단화를 위한 습작으로, 사도의 손을 연구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의 손을 표현한 건 맞지만, 손의 모델은 따로 있다.
뒤러는 독일 뉘른베르크의 금세공사 집안에서 열여덟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와 한 동생은 모두 예술가를 꿈꿨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둘 다 공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제비뽑기를 통해 뒤러가 먼저 미술 공부를 하기로 하고, 동생은 광산에 들어가 형의 학비를 벌어 뒷바라지했다. 뒤러는 화가로 성공해 동생을 공부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몇 해 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동생의 손을 보고 말문을 잃었다. 거친 노동으로 얻은 굳은살과 상처로 손이 뒤틀려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오히려 형이 자신의 몫까지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 순간 뒤러는 말없이 동생의 손을 스케치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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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