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로 제조업 복원 노리는 ‘산업-노동’ 對中 기술, 데이터 통제하는 ‘안보-전략’ 물가, 환율 고려해 속도조절 ‘재무-거시’ 그 타협물인 美 통상체제 읽어낼 감각 필요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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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겉으로 보면 단순해 보인다. ‘상호관세’라는 명분 아래 미국의 산업과 고용을 되살리겠다는 구호가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책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정책조직이 하나의 청사진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서로 다른 목표와 계산을 가진 여러 정책 블록이 암묵적 타협으로 정책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정책 연합이 공식적인 기구나 협의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 통상정책은 늘 그렇듯 부처 간 권한이 교차하는 네트워크 구조 속에서 결정돼 왔다. 예컨대, 2018년 대(對)중국 고관세 조치 시 미 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했지만 재무부, 노동부 등 여러 부처가 환율, 노동, 물가 등 각자의 관점에서 조율에 참여했다. 또한 8월 23일 대중 관세 면제 연장 결정 과정에서도 재무부의 완화 의견과 안보 라인의 전략품목 제외 요구가 병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다층적 절차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 연합의 실체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 라인들이 있을까? 먼저 산업·노동 라인(USTR, 노동계)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제조업 리쇼어링(국내 복귀)과 일자리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들에게 대중 고관세 정책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산업의 복원을 촉진하는 정치경제적 수단이다. 중서부 산업벨트의 표심 회복, 노동조합의 결속 강화, 그리고 미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진다. 2024년 5월 USTR의 4년(2018∼2022년) 재검토 보고서 이후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설비 등 전략품목 관세율이 인상된 것은 이 연합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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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거시·재무 라인(재무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이다. 인플레이션 완화와 금융시장 안정을 우선시해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이 라인은 고율 관세가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환율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관세 자체는 유지하되 면제, 유예, 시행 시기 조정을 통해 충격을 완화하려 한다. 앞서 언급한 8월 23일 대중 관세 면제 연장 결정이 대표적이다.
이 세 그룹은 표면적으론 다르게 보이지만 전략적 방향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모두 ‘중국의 과잉 설비와 비시장적 행위는 구조적 위협’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다만 이를 ‘보호’의 언어로 접근하느냐, ‘통제’의 언어로 접근하느냐, ‘안정’의 언어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바로 이 다층적 이해관계가 현재 중국과 그 외 국가에 대한 ‘이원적 관세체제(dual tariff system)’라는 새로운 통상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축은 상호관세 체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상호관세 원칙’을 공식 선언하며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국가 및 품목별 관세를 차등 조정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캐나다, 멕시코 등 전통적 동맹국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관세를 일정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이들은 대규모 투자나 구매를 약속해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공정무역의 회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과 고용 확대를 위한 투자 유인을 겨냥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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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이 미 행정부를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관세를 피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관세가 만들어지는 정책 구조를 읽는 전략적 감각도 필요해진 시점이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