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그늘에서/제인 구달 지음·최재천 외 옮김/434쪽·1만8000원·사이언스북스
이런 식으로 한정된 벼슬자리를 놓고 싸우는 일 따위에 몰두하게 되면 최대한 남을 깎아내릴수록 내게 이득이라는 생각에 젖게 된다. 남이 떨어져 나가고 불행해지는 것이 내가 붙는 길이고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감각을 갖고 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세계는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개 과학은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이 누구든 간에 그 혜택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누리기 마련이다. 과학자가 천연두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내면 세계의 모든 사람이 천연두를 앓지 않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벼슬자리 경쟁과는 다르다.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아주 건강해지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아프게 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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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과학 기술의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가 생길수록 사회 전체가 이익을 얻을 때가 많다. 막연한 차별 때문에 과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성장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도 손해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손해다. 그러니까 차별은 비도덕적인 일이기에 없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과학 인재를 길러 사회 발전을 도모한다는 면에서 생각해 봐도 쓸데없는 비효율이다. 성별, 계층, 출신 등에 대한 고루한 관념 탓에 “그런 사람은 과학자가 되기에는 좀 안 어울리지”라며 꿈을 꺾어버리면 인재의 절반 이상을 버리게 된다.
‘인간의 그늘에서’는 얼마 전 작고한 전설적인 영장류 연구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쓴 교양 과학서다. 이 책에는 과학 지식과 더불어 1960년대, 여성 침팬지 연구자가 극히 드물었던 시기에 비서 학교 출신인 20대 여성으로서 아무런 학문적 배경이 없었던 젊은 구달 박사가 과감하게 연구의 기회를 찾아 도전했던 생생한 경험도 같이 서술돼 있다.
그래서 침팬지들의 습성과 주위의 환경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풍부한 책이면서, 다양한 배경을 갖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더 넓은 미래를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과거에는 불평등 때문에 배제되었던 인재가 기회를 얻도록 해 주면 그만큼 신선한 발상과 색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니 새로운 과학 기술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까지 담겨 있는 느낌이다. 구달 박사의 놀라운 삶을 생각해 보며 읽는다면 이 책은 그 자체로 더 열려 있는 평등한 기회를 보여주는 일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성과로 돌아올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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