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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경증환자까지 대학병원 ‘응급실 쏠림’… 지역 의료체계 위협

입력 | 2025-11-06 03:00:00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입구. 뉴스1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요즘 응급의료 현장에서 가장 큰 고민은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 나은 진료를 원하는 마음은 당연하지만, 경증·만성질환자나 특별한 증상이 없는 건강검진 환자까지 서울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지방 의료는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 응급의료 체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지역 병원은 심장마비, 교통사고, 뇌출혈처럼 예측 불가능한 위급 상황에 24시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위급하지 않은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면서 지역 병원은 응급실 유지에 필요한 당직 인력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응급실 축소, 인력 감축, 심지어 폐원까지 이어진다. 응급의료는 평소엔 눈에 띄지 않지만 위기 순간에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지방에서조차 균형이 무너지면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환자 선택권이다. 환자는 자신의 의학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언론에 많이 노출된 대형병원을 선호하게 된다. 특히 한국은 무증상 건강검진 환자까지 대형병원으로 몰리며 의료 체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해법이 보인다. 선진국 대학병원은 중증·희귀질환 치료와 연구에 집중한다. 일반적 검진과 경증 질환 관리는 지역 1, 2차 의료기관이 담당한다. 또 환자 뜻을 무조건 존중해 병원을 옮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1차 진료 의사가 전원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전원하는 의사와 환자를 받는 병원 의사가 환자 정보를 공유하며 협의한 뒤 전원을 결정한다. 이 과정은 환자 안전을 보장하고 병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중요한 장치다.

문제 해법은 명확하다. 예방, 진단, 치료, 재활까지 지역 내에서 완결 가능한 ‘지역완결형 의료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지방 병원이 24시간 응급의료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인력, 재정 지원, 합리적 수가 제도가 필요하다. 또 환자를 보내는 의사와 받는 의사가 사전에 협의한 뒤 전원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언론과 환자단체 역시 ‘대형병원이 곧 최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지역 병원 가치와 필요성을 적극 알려야 한다.

응급의료는 가족과 이웃이 갑자기 쓰러지는 순간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지방 병원이 무너지면 안전망도 사라진다. 지금이야말로 대형병원 쏠림이 초래할 구조적 위험을 직시하고, 지역 의료와 응급 체계를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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