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국판 옥토버페스트’ 꿈꾸는 지역축제들…“지역성 부각 콘텐츠 필요”

입력 | 2025-10-08 09:00:00


뉴스1

“김천 하면 뭐가 떠오르냐고요? ‘김밥천국’ 아닌가요?”

경북 김천시는 김 한 장 안 나는 지역이지만 지난해 김밥축제로 흥행했다. 젊은 세대가 ‘김천’하면 분식 프랜차이즈 ‘김밥천국’을 먼저 떠올린다는 점에서 착안해 역발상으로 김밥축제를 개최한 것. 그 결과 인구 13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에 4만여 명은 김밥을 맛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난해 김천김밥축제에 몰려든 인파. 김천시 제공

두 번째 김밥축제는 이달 25, 26일 직지문화공원과 명대사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시는 지난해의 수요 예측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했다. 특히 올해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로 글로벌 관광객 유입이 예상된다. 시는 김밥 판매업체를 기존 8곳에서 30여 곳으로 늘리고, 부스별 키오스크 설치해 구매 대기 문제를 해결했다. 가장 큰 불편으로 셔틀버스도 지난해보다 4배 늘렸다.

경북 구미시는 2022년부터 ‘라면축제’를 열고 있다. 국내 최대 라면 생산 공장인 농심 공장이 구미에 자리한 점에서 시작됐다. 공장에서 갓 튀긴 라면을 구입하거나 이색 라면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해마다 방문객이 증가하며 2024년에는 3일간 17만 명이 구미를 찾았고, 이 중 외지인이 48%, 외국인 관광객도 100여 명에 달했다. 시는 15억 원 규모의 지역 소비가 창출된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축제는 내달 7일부터 9일까지 구미역 일대에서 열린다.

이처럼 지역 특산품을 내세운 전통 축제와 달리 스토리텔링과 재미를 전면에 내세운 이색축제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시를 외지인들에게 각인시키는 동시에 경제적 효과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병국 대구대 호텔관광경영학부 교수는 “도시 이미지를 제고하고 경제 활성화를 이끌었다는 부분에서 성공적인 축제”라고 말했다.

다만 뚜렷한 지역적 특색 없이 행사를 이어간다면 단기적 흥행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축제 소재가 지역의 고유 자원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명소·상권·산업 등과 연계해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방문객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연속성을 확보하려면 지역성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1810년 바이에른 공국의 왕 루드비히 1세의 결혼 축하 파티에서 출발해 오늘날 세계 최대 맥주 축제로 성장했다. 뮌헨이 ‘맥주의 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전통과 제도가 한몫했다. 1516년 바이에른에서 제정된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은 맥주를 물·보리·홉만으로 빚도록 규정한 법령으로, 이 제도를 기점으로 뮌헨은 독일 맥주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옥토버페스트에서 판매되는 맥주는 뮌헨 시 당국이 공식 인정한 6개의 전통 양조장(호프브로이,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슈파텐, 뢰벤브로이, 하커프숀)에서만 공급된다. 이들 양조장은 축제 기간 직접 대형 맥주 텐트(Festzelt)를 운영하며, 하루에도 수만 명의 방문객이 모여 맥주와 음식을 즐긴다. 이 기간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바이에른주 전통의상 ‘레더호젠(Lederhosen)’과 ‘드린딜(Dirndl)’을 입은 주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볼거리를 더한다.

2주간 열리는 행사에는 매년 600만 명이 찾으며, 소비되는 맥주만 약 700만 리터에 달한다. 숙박·교통·기념품·의상 산업을 아우르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약 12억 유로(약 1조9800억 원)로 추산돼 뮌헨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소도시 망통의 레몬 축제(Fête du Citron)는 지역 특산물과 관광을 결합한 성공 사례다. 망통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레몬과 감귤 재배로 유명했지만, 도시 규모가 작아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에 시는 1934년 지역 특색을 살리고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레몬 축제를 공식 창설했다.

축제 기간 망통은 130톤(t)이 넘는 감귤류와 15톤의 과일, 8km에 달하는 꽃 장식으로 도시 전체를 꾸며 ‘레몬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레몬으로 만든 대형 조형물과 화려한 퍼레이드는 관광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망통은 해마다 다른 주제를 내세워 관광객의 재방문율을 높였다. 올해는 ‘별 속의로의 여행’을 주제로 열렸고, 지난해에는 파리 올림픽과 연계해 ‘올림픽,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주제로 잡았다.

지역 레스토랑에서는 레몬을 활용한 특별 메뉴를 선보이고, 상점에서는 레몬 아이스크림·잼·비누·향수 등을 판매한다. 레몬나무 가지치기, 레몬 타르트 만들기, 레몬 농장 산책 액티비티 등 체험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면서 매년 20만 명 이상이 찾는 국제적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어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차별화된 체험 콘텐츠로 성공을 거둔 축제도 있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소도시 부뇰은 인구가 9000명에 불과한 작은 농촌 마을이지만,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토마토축제 ‘라 토마티나(La Tomatin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라 토마티나는 1940년대 중반 토마토 값 폭락에 분노한 지역 농부들이 당국에 항의의 표시로 토마토를 던진 것이 유래가 됐다. 축제는 1950년대 초 종교적 의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됐지만, 주민들이 1957년 ‘토마토 장례식’ 행진까지 벌이며 부활을 요구한 끝에 재개됐다.

축제의 주요 행사인 ‘토마토 던지기’에는 매년 약 120톤의 토마토가 사용된다. 현재는 과도한 인파를 막기 위해 15유로짜리 티켓제로 운영되며, 참가자는 2만여 명으로 제한된다. 이 가운데 약 70%가 외국인 관광객이다. 부뇰 시의회는 올해 행사로 200만 유로(약 33억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사례들이 보여주듯 축제는 지역의 산업·자원·상권과 긴밀히 연결될 때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른 축제와 차별화되는 ‘킬러 콘텐츠’를 발굴하고, 축제 소재를 도시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발전시켜 축제 기간 외에도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김 교수는 “축제는 방문객들을 유입할 수 있는 도구”라며 “이후 지역성을 드러내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체험, 명소 방문 등으로 확장돼야 지속 가능한 관광으로 연결된다”고 조언했다.

김혜린 기자 sinnala8@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