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수집가/전건우 지음/228쪽·1만3000원·북오션
늦은 밤 빈 지하철 객차 안에서 문득 눈에 띈 가방,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맞이한 정체 모를 룸메이트, 구제 시장에서 산 의문의 얼룩이 묻은 옷, 혼자 사는 집에서 한밤중에 울리는 초인종, 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면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 현대의 도시에서 살고 있거나 살아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그리고 내가 가장 열광하는 종류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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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룸에서 이상하게 수도 요금이 많이 나왔다더라. 알고 봤더니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그 집에 살면서 피해자 시신을 화장실에서 처리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은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동네, 흔한 원룸일 뿐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이주민, 즉 ‘타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비튼다. 독자는 주인공 옆집에 사는 이주노동자가 설마 범인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혹시?’ 하는 의심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괴담답게) 독자의 짐작대로 흘러간다. 그 결말은 뻔하기 때문에 실망스럽다기보다 괴담 장르의 공식에 착착 들어맞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지하실’도 범죄사건에서 시작한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 지하실은 세 드는 사람마다 죽어 나간다더라. 그 지하실에 있던 이상한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실제로 시체가 발견됐다. 작가는 이 범죄를 치정사건으로 살짝 변용한다. 교제폭력의 가해자가 내 친구라면? 교제폭력을 저지른 살인자가 내 옆에 있다면? 남성의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은 두렵다.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에 대해 나는 실제로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작가는 머리말에서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의 실제 경험담”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했던, 혹은 털어놓았어도 거짓말이나 착각이라고 무시당했던 자신만의 사연을 내게 들려주었다”고 말이다. 즉 ‘누군가’ 겪은 (혹은 겪었다고 주장하는) ‘실화’이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이며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진실은 알 수가 없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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