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법천문도
“큰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니 별이 수십 배 많아 보이고 경계가 매우 명료해졌다. (…) 은하수는 곧 무수한 작은 별들이라, 그 조밀함 때문에 마치 흰 강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8폭 병풍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의 제4~7폭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당시 첨단 기술인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한 서양의 천문 지식이 담긴 것. 병풍 마지막 폭에는 맨눈으로 관측하기 힘든 태양의 흑점, 토성의 5개 위성 등도 세밀히 묘사돼 눈길을 끈다.
신·구법천문도의 일러스트 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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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법천문도를 보존처리 중인 모습
전통적인 구법 천문도가 서양의 근대 천문학에 기반한 신법 천문도로 대체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 깊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구법 천문도는 투영법과는 상관 없이 별자리의 위치와 형태를 어림으로 그려 넣었고 북극이 중심에 놓였기에 왜곡이 상당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개국과 함께 제작된 천문도로서 오랫동안 권위를 이어 갔다”고 했다. 조선 영조(재위 1724∼1776)가 값비싼 천체망원경을 수입하고서 왕권 하락을 이유로 부숴 버린 일화도 전해진다.
신·구법천문도를 보존처리 중인 모습
즉, 전통 지식을 존중하고 청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최신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했던 것. 안 연구원은 “근대 천문학의 발견인 성운과 성단,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별, 서양의 기하학적 도법 등이 전통 천문학과 함께 다채롭게 담겼다”고 했다. 당대 지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난다. 장 관장은 “18세기 후반 지도책인 ‘여지도(輿地圖)’(국가지정유산 보물)에는 전통적인 지도와 서양식 세계지도 ‘천하도지도’가 같이 수록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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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