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올해 서울아트마켓 무대 올려 톨스토이 ‘주인과 하인’이 원작 “세계적 문학, 판소리로 바꾸면 이야기 끌어당기는 힘 딱 맞아”
그를 뭐라 부르면 좋을까.
가수, 국악가, 공연예술가, 뮤지컬 배우…. 그리고 누군가에겐 여전히 ‘예솔이’. 하지만 그에게 맞춤한 옷은 단정하기 어렵다. 그저 소리꾼 이자람(46·사진). 수수한 티셔츠 차림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가도, 판소리 등 음악 얘기는 금세 그를 영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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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도움 되는 공연 되길”
소리꾼 이자람이 올 4월 초연한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무대. 2019년 ‘노인과 바다’ 이후 6년 만의 신작으로, 다음 달 ‘서울아트마켓’에서 다시 선보인다. 그는 판소리에 대해 “사람에 대한 연민이 깊다”고 했다. LG아트센터·Studio AL 제공
‘눈, 눈, 눈’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과 하인’이 원작. 설원에서 길을 잃은 상인 바실리와 하인 니키타의 여정을 판소리로 풀어냈다. 이윤에 눈먼 바실리는 하인의 안전도 돌보지 않는 탐욕스러운 인물이지만, 이후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엔 바실리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를 저와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 받아들이자 용서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구성진 가락으로 관객을 머나먼 러시아의 눈밭으로 데려가는 그는 “인간이 ‘살고 죽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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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말씀하시길, ‘좋은 걸 먹고 싶어서 제 공연을 보러 왔다’더라고요. 제 공연이 영양제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독약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제가 더 잘 살아야겠어요.”
● “판소리는 ‘짱 먹는’ 예술”
이자람은 스무 살인 1999년 춘향가를 8시간 동안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전통 판소리 계보를 잇던 그는, 이젠 창작 판소리를 주도하는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2007년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재창작한 ‘사천가’는 그를 세계에 알린 작품. 마르케스의 ‘이방인의 노래’(2014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2019년) 등 서구 문학을 꾸준히 판소리 무대에 올려 왔다.
“일종의 ‘가교’ 같은 거죠. 한국 문학은 우리 삶에 너무 맞닿아 있어서, 이야기를 끌어당기는 판소리로 풀어내면 오히려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반대로 멀리 떨어진 외국 문학은 판소리로 당겨오면 딱 적당한 거리가 생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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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이자람을 이루는 가장 단단한 뼈대는 역시 판소리가 아닐까. “해외에서 판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냐”고 물으니 “짱 먹는 예술”이라고 당차게 답했다.
“그냥 외국인들이 평소에도 즐기는 연극이나 오페라처럼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그저 제3세계의 신기한 공연이 아니라요. ‘나는 너네 공연들을 다 보고 씹어 먹은 다음에, 내 걸 하는 사람이야. 대한민국엔 이리도 탁월한 예술이 있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