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금지어 사전’ 저자 김봉중 교수 “다양성 축소, 미국의 발전 동력 약화 우려”
‘트럼프 금지어 리스트’ 일부.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공개한 ‘트럼프 금지어 리스트’에 오른 단어 수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인종(racial)처럼 미국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는 물론,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같은 중립적 표현, 기후위기(climate crisis), 오염(pollution) 등 기후 관련 용어도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단어들을 연방정부 공식 문서와 웹사이트에서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치 이후 연방기관 홈페이지는 즉각 수정됐다. 연방 항공청 채용 페이지에 있는 “최신 기술과 시스템을 활용하는 다양한(diverse) 인력의 일원이 될 것입니다”라는 문구에서 ‘다양한’이 빠졌다. 국무부 홈페이지에서는 기후위기 관련 내용이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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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체성도 지운다
‘트럼프 금지어 사전’을 집필한 김봉중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김봉중 제공
트럼프 대통령이 금지한 단어 상당수는 미국 사회의 기본 가치와 제도에 뿌리내린 표현들이다. ‘인종주의자(racist)’ ‘블랙(Black)’ 같은 인종차별적 역사를 포함한 단어부터 ‘다문화(multicultural)’ ‘취약계층(vulnerable populations)’ 등 소수자 관련 표현까지 다양하다. 단어 자체가 혐오적이라서가 아니라, 인종·다양성 이슈 등을 공적 담론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금지 단어 중 가장 상징적인 단어로 DEI를 꼽았다.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의 약자로, 건국 이래 계속해서 다문화사회였던 미국을 뒷받침하는 가치다. 김 교수는 변화가 빠른 하이테크(high-tech) 산업에서 다양한 배경과 시각이 큰 힘이 되는 만큼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은 DEI를 바탕으로 인재를 확보하고 창의성을 높여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동종업계보다 평균 27~39% 높은 수익성과 혁신성을 기록했다고 분석했으며, 미국 상공회의소도 리더십의 다양성이 10% 늘면 기업 이익이 0.8% 증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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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빅테크의 변화도 감지된다. 구글은 채용·승진·의사결정·조직문화 전반에 DEI를 적용하며 2025년까지 소수 집단 출신 리더십을 3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올해 2월 이를 전면 철회했다. 메타도 1월 DEI 전담팀을 해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공식 폐지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DEI 중심 채용 방식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전쟁, 경제도 흔드나
이 같은 금지어 정책은 미국 내부의 문화전쟁처럼 보이지만, 갈등이 장기화하면 미국에서 일하거나 투자하려는 해외 기업과 인재 사이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그간 한미 경제협력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기업 활동에 대한 처우가 예측 불가능해지면 정서적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면서 “결국 투자자도 신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단속 사태는 그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적법한 비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 노동자들을 중범죄자처럼 손목이나 발목을 묶은채 호송차에 실어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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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에 대응하려면 제도적 투명성과 시민 참여 확대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부분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언어의 의미를 촘촘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성찰하는 게 사회 역량의 핵심”이라면서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트럼프 금지어 사전’을 집필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07호에 실렸습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