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서울에 산 지 10여 년, 이런 곳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을 방문한 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유명 화장품 가게에 가보기도 하고, 아내 덕분에 특정 제품의 이름을 외워 추천해 준 적도 있다. 이번 미용 클리닉 방문은 아내의 추천 때문이었다. 아내는 잠들기 전 기본적인 피부 관리만 하는 편인데, 최근 들어 우리 부부 모두 나이를 실감하던 차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아내 지인이 근무 중이어서 예약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거울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할 때가 됐어.”
접수처 풍경은 공항 체크인 카운터를 닮아 있었다.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 한국 여자들이 작은 흰색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그 가운데 나는 유일한 남자였다. 얼굴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시술받아 피부가 거북이 껍데기처럼 울퉁불퉁해진 환자가 지나갔다. ‘아, 이건 단순히 마스크팩을 붙이는 정도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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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서 대기실 분위기가 더 답답해졌다. 다행히 아내의 지인이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였다. 시술이 지연되는 걸 보자 나를 3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고급 마사지실 같은 공간에 들어서니 비로소 숨이 트였다.
3분 정도 기다리자 이름이 호명됐다. 침대에 눕자 누군가 얼굴에 차가운 젤 크림을 잔뜩 발라준 뒤 램프를 쐈다. 잠이 들려던 찰나, 램프가 치워졌고 다시 2층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얼굴 관리의 세계에서 승진한 줄 알았는데, 전장으로 다시 돌아온 거였다. 옆에는 얼굴에 하얀 젤이 뒤덮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하얀 크림 케이크를 얼굴에 던진 것 같았다. 15분 뒤 미세한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가 얼굴 위를 지나갔고, 곧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예전에 어깨에 문신을 새길 때 느낀 통증과 흡사했다. 이어 얼굴 곳곳에 주사가 놓였다. 시술은 한 시간 남짓 이어졌다.
주사를 맞은 지 10분이 지나자 불현듯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까 그 거북이 같은 피부로 나간 여성과 같은 시술이 아닐까 싶었다. 이윽고 시원한 젤이 얼굴에 도포된 뒤 시술은 마무리됐다. 시간은 오후 6시였다. 근처 서점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했다.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슬쩍슬쩍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성형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쇼핑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던 과거의 나처럼. 당황스러운 마음에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 속 내 모습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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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