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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됐다. 몇 년 새 재정 상황이 나아질 전망이 안 보인다.” 긴축재정에 대한 반발로 내각이 붕괴되는 등 ‘국가 마비’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2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췄다. 독일 등 다른 유럽 선진국은 물론 한국(AA-)보다 낮다. 충격적인 성적표에도 재정 개혁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공휴일 이틀 축소’ 정책을 여론에 밀려 결국 포기했다.
▷최근 프랑스 정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는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어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고 했던 제3공화국 시절을 연상케 한다. 지난해 1월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을 시작으로 9월 가브리엘 아탈, 12월 미셸 바르니에, 이달 8일 프랑수아 바이루 등 개혁을 추진하던 총리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7월 정부 지출 동결, 공휴일 이틀 축소 등으로 440억 유로(약 72조 원)를 절감하는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내놨던 바이루 전 총리는 야당과 갈등을 빚다가 8일 하원의 불신임을 받았고, 내각은 해산됐다.
▷프랑스 정치 혼란을 부른 재정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 유로(약 520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이른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50%대 수준이었지만 금융위기와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급격하게 증가했다. 에리크 롱바르 재무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 위험을 경고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내렸고, 12일 피치에 이어 S&P도 신용등급 강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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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파멸적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정 적자 확대→금리 급등→긴축 재정→국민 반발→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늘린 복지 지출은 여간해선 줄일 수 없는 구조적 경직성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도 40년 뒤에는 현재의 3배인 156.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 같은 재정 포퓰리즘의 지독한 끝을 경계해야 한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