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장 한국인 구금] 美부처 엇박자에 한국인 피해 “한국인 1명이상 규정 위반 안해”… ICE 내부문건에 ‘합법 비자’ 확인 “이민 당국, 국무부 지침도 무시… 건설 현장 과잉 법집행” 지적
“단속 주도 ICE 폐쇄하라” 항의 시위 9일(현지 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규모 단속 및 추방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민들이 이번 단속을 주도하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폐쇄하라’는 팻말을 들고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시카고=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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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당국이 일부 한국인 근로자가 합법적인 비자를 갖고 있음을 알면서도 체포해 구금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한국인 근로자를 표적으로 한 대규모 단속을 주도한 이민세관단속국(ICE) 내부 문건에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 최소 한 명 이상이 비자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
‘B1·B2’ 비자를 소지한 이들은 체포 당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1·B2 비자는 비즈니스 목적의 단기 상용비자(B1)와 관광비자(B2)를 합친 것으로 회의 참석이 허용된다. 현지 이민변호사는 가디언에 “미국 정부가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히 한국인 근로자 상당수가 B1 비자를 소지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민 당국이 무차별 체포에 나섰을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의 파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 적법 비자 알고도 한국인 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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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의 상급 기관인 국토안보부(DHS) 대변인은 가디언에 “해당 인물은 불법 취업 사실을 인정했으며 자진 출국을 제안받고 이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체포 자체가 불법”이라며 “미국 정부가 잘못을 피하기 위해 (불법 체류자) 숫자를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조지아주에서 활동하는 이민 변호사 찰스 쿡도 가디언에 “유효한 비자 소지자를 이런 방식으로 구금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정부가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 추방 실적 급한 이민당국, 국무부 지침도 무시
현재 구금된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는 B1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 포함된 한국인 근로자 외에도 억울하게 체포된 이들이 적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비자 업무를 총괄하는 미 국무부의 외교업무매뉴얼(FAM)에 따르면 B1 비자 소지자는 해외에서 제작·구매한 장비를 설치·시운전하거나, 현지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 건축 또는 건설 업무를 감독하거나 교육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미국 내에서 직접 보수를 받아선 안 된다. 국무부 매뉴얼에 따르면 B1 비자를 소지하고 현지 공장 건설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이민당국이 불법 체류자로 규정하기 어려운 셈이다.
미 이민 당국이 비자 규정을 위반하지 않은 한국인 근로자를 체포·구금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번 사태의 처리 과정을 두고도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합법적인 비자를 소지한 이들은 미국에서 추방할 수 없음에도 이민 당국이 조사 과정에서 체포된 근로자들의 불법 체류를 인정하는 대신 재입국에 불이익이 없는 자진 출국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것. 적법한 체류를 증명하려면 구금소에 남아 이민 재판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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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