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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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얻어가야 할 것을 잘 뽑아 갔다.”
여당 핵심 정치인은 8일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오찬 회동에 대해 ‘윈-윈-윈’이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여야 대표 오찬 회동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환하게 웃는 이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여야 대표가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이었다. 장 대표는 “악수하려고 마늘과 쑥을 먹기 시작했는데 100일 되지 않았는데 악수에 응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악수를 거부했던 정 대표를 향한 뼈가 담긴, 그럼에도 기분 나쁘지 않은 농담에 이 대통령도 정 대표도 무방비 상태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승자 된 ‘윈-윈-윈’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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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악수 한 번으로 야당은 물론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의 기회를 얻었다. 그는 당 대표 취임 후 국민의힘과 악수도 대화도 거부해 왔다. 그랬던 그가 “손을 잡자”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장 대표와 손을 포개 잡았다. 이 대통령이 “여당이 더 많이 가졌으니까 좀 더 많이 내어주면 좋겠다”고 하자 정 대표는 “네 그렇게 하겠다”고 호응했다. 악수를 거부하는 불통 이미지를 희석하고 대통령 앞에서 선을 넘는다는 의심을 푸는 데 조금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여야의 교착 상태를 푸는 역할을 했다. ‘사이코패스’,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 등 거친 설전을 벌인 여야 지도부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정치력도 발휘했다. 이 대통령의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상)’에 ‘페이스메이커(pacemaker)’에 이어 ‘하모니 메이커(harmony maker)’가 추가됐다.
모두발언 마지막에 장 대표에게 추가 발언을 권유하며 야당 대표로부터 “이런 게 협치의 모습”이라는 감사 인사까지 끌어냈다. 야당 대표와 협치 모드를 조성해 강성 당원을 향해 질주하는 정 대표에게 꽉 찬 견제구를 날렸다는 말도 나왔다.
하루 만에 돌아선 與野, 다시 손잡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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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돌아선 여야를 다시 손잡게 하는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윈-윈-윈’ 협치가 이어진다면 최대 수혜자는 이 대통령이다. 이른바 ‘더 센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의 시행을 앞두고 기업계의 우려가 크다. 형사사법 제도의 틀을 바꾸는 검찰청 폐지는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 동맹국 국민 300여 명을 쇠사슬로 묶어 체포해 구금하고도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이럴 때 정부와 여야가 민생·외교 현안에 머리를 맞대는 것은 무엇보다 정권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내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고 약속했다. 악수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낼지, 협치의 출발점이 될지는 결국 이 대통령에게 달렸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