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장비, 中반입땐 허가 받아라” 갑자기 제한… 경영 불확실성 확산 지분 요구 번복-관세 으름장 등… ‘손바닥 뒤집기’ 정책에 속수무책 귀국 이재용 “제 일 열심히 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 규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하고 있다. 인천=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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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반도체 관련 정책이 자주 바뀌면서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약속했던 반도체 보조금 대신 기업 지분을 요구하거나, 중국으로 보내는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를 갑자기 강화하는 등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게 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방식의 ‘반도체 길들이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트럼프식 길들이기에 피로감 커지는 韓 기업
31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하려면 건별로 미 행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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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치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단기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공장은 정기적인 장비 교체와 유지 보수가 필수인데, 행정 절차가 추가된 데다 승인 여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약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약 4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허가를 무기로 대규모 거래에 나서기도 했다. 4월 엔비디아의 H20 등 중국용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가, 지난달 이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중국 판매 매출의 15%를 정부에 귀속시키기로 한 것. 최근에는 반도체 관련 품목별 관세를 100%까지 높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기업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 반도체 업계 “먼저 움직일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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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기업인들도 ‘로키(low-key·절제된 방식)’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날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 강화에 대해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올해 핵심 먹거리 등의 추가 질문에도 “일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차원의 국내 반도체 기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국내 기업이 미국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반입할 때 한국 정부가 미국 기준에 맞춘 인허가를 집행할 수 있도록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