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AI 주권’ 확보하려면 AI수석-100조 펀드 등 새 정부 의욕 특정 모델에 집중하면 따라잡기 돼… 투자 일부 차세대 원천 연구에 써야 AI가 사회구조 변화 일으키는 만큼… 교육-직업-윤리 등에도 대응 필요 AI 공존 방식 찾을 때 진정 ‘AI 강국’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정부는 한국 독자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국가대표 AI’ 지원에 나섰다. 최신 글로벌 AI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의 ‘소버린(Sovereign·주권) AI’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소버린 AI 전략의 중심에는 트랜스포머 기반 대형언어모델(LLM)이 있다. 이는 세계와 경쟁하면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고, 산업에 당장 활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다.
그러나 기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기술은 늘 교체됐다. IBM은 메인 프레임을 사실상 독점하며 PC 혁명의 불을 지피고도 MS, 인텔 등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야후는 인터넷의 상징이었지만 구글 검색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구글조차 챗GPT 등 AI의 도전에 직면해 검색의 미래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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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예산 배분은 지금과 미래를 동시에 겨냥해야 한다. 전체 예산의 80∼90%는 기반 기술 경쟁과 산업화·실용화를 위한 기술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 및 한국 문화 특화 언어모델, 산업별 맞춤형 AI, 연산 인프라 확충 등을 말한다. 나머지 10∼20%는 반드시 차세대 AI 원천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지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돌파구는 여기서 나온다.
차세대 연구 방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뉴로-심볼릭 AI’다. 신경망의 직관적 판단과 상징 처리의 논리적 추론을 결합해 현재 AI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해석가능성(interpretability)의 부재, 즉 ‘블랙박스 문제’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최근 앤스로픽은 자사 모델에 내재된 수십만 개의 뉴런을 의미 단위로 해석하는 연구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트랜스포머의 해석 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시도다. 당장 뉴로-심볼릭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AI 내부 과정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란 점에서 맥이 닿아 있다. 이런 도전을 한국이 선제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미래 변화의 물결에서 또다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다.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해외에서는 이미 AI를 학습 파트너로 활용하는 교육혁신이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챗GPT의 ‘학습(study) 모드’는 단순히 정답을 내놓는 대신에 학습자의 사고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한다. 한국 교육이 이런 흐름을 외면한다면 미래의 주권은 기술보다도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흔들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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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기술적 우위뿐만 아니라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공존이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윤리적 원칙과 안전성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술 성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소버린 AI의 진정한 의미는 독자적 기술력 확보에만 있지 않다. AI와의 공존으로 개인과 사회의 효율을 높이고 난제를 해결하며 한국적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주권의 길이다. 대규모 투자, GPU 확보, 공공 AI 바우처 도입 등도 모두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이 철학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단순한 추격자를 넘어 진정한 AI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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