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작가의 작업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MMCA X LG OLED’ 시리즈의 첫 주인공 추수 작가의 전시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의 모습이다. 이 전시에는 미디어 작품뿐 아니라 영상 속 그래픽과 비슷한 형태의 조각 ‘아가몬’이 한 가운데 놓여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실물 조각보다 영상 속 형체가 오감을 더욱 일깨운다. 시골 벌판에서 듣는 장작불 소리보다 고성능 마이크로 녹음한 장작불 ASMR이 더 실감 나게 귀에 꽂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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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작가 작품 전시
영상이 더 실감 나는 데엔 이유가 있다. 1992년생인 추수 작가는 현실보다 온라인이 더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즐겨 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림을 올리던 내게 디지털 매체는 모국어와 같다”고 했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땐 손으로 그림과 글을 쓰지만, 작품을 제작할 땐 전부 3D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스크린이 캔버스고 붓은 마우스인 셈이다.
화가가 사다리를 놓고 큰 캔버스와 씨름하거나, 조각가가 땀 흘리며 돌을 깎는 모습에 비교하면, 책상과 모니터, 컴퓨터가 놓여 있는 미디어 작가들의 작업실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노동 강도는 전통 매체 작업보다 덜하지 않다. 추수 작가는 “컴퓨터 앞에 앉아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어깨 손목부터 골반까지 무리가 가서 차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거나 치아가 두 개 빠진 적도 있다”고 했다.
미디어 작품들이 이렇게 정교한 노동과 기술을 더해가면서, 세계적인 작가들이 원하는 색감과 움직임을 구현하는 ‘좋은 캔버스’를 마련하러 한국의 기술을 찾는 경우도 생긴다. 영국의 영상 예술 거장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존 아캄프라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전시를 준비하며 LG전자에 OLED 스크린을 사용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OLED 기술은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셀플릿’ 입자 소자로 만들어 완전한 검은색과 미세한 그러데이션까지 표현이 가능하다. 아캄프라는 어두운 색감이나 흑백 영상을 자주 쓰기 때문에 ‘최대한 OLED 스크린을 많이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OLED 스크린은 아니시 카푸어,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유명 현대 미술가들도 자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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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아트 기술, 보존 연구는 숙제
2024년 존 아캄프레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미디어 작품은 아날로그 매체에 비하면 제작 과정이나 전시, 보존 과정이 더욱 복잡하다. 유명 작가인 아캄프라가 한국 기업의 문을 두드렸던 것처럼, 스크린을 찾는 과정은 물론 작품을 소장하고 관리하는 데에도 비용과 에너지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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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