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시각을 전달해 온 대표 콘텐츠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지난해 8월 2일 경남 사천시 한 채석장 내 비포장도로에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추락해 전복돼 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지난달 30일 오전 경남경찰청 관계자들은 기자실을 찾아 1년여 전 발생한 ‘사천 채석장 발파(發破) 사망사고’ 수사 결과를 백브리핑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마디로 ‘대충 수사’했지만 대충 수사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
사망 사고는 지난해 8월 2일 발생했다. 사천시 한 채석장에서 발파 작업을 하던 중 튄 돌덩이 파편에 맞아 자동차 운전자와 동승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발파 업체의 대표와 전무였던 이들은 이 발파 과정에서 3m 언덕 아래로 차와 함께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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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족이 경찰 수사가 무언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한 근거가 같은 달 속속 나왔다. 유족들이 나서 사고 차량과 채석장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확인한 이후다. 차가 전복되기 직전에 발파 작업이 있었던 정황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해 8월 2일 경남 사천시 한 채석장 내 비포장 도로에서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추락해 전복돼 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경남경찰청은 발파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지난해 10월 불구속 송치했다. 교통사고가 아님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중대재해 혐의를 은폐하고 증거 보존을 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사천경찰서 경찰 4명과 노동부 근로감독관 2명, 채석장 관계자 12명 등을 직무 유기 및 증거 인멸 혐의로 같은 달 고소·고발했다.
‘줄줄이 불송치’. 사고 1년여 뒤 나온 ‘대충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는 여섯 글자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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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사고 이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은 근로감독관들도 불송치 결정했다. 당시 원인 조사가 끝나지 않아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작업 중지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사고 당일 추가 발파가 진행되며 현장이 훼손됐다는 지적도 나온 터다.
사고 차를 폐차 시도하고 추가 발파를 진행했으며, 서류를 반출한 업체 직원들도 불송치 처분했다. 수사를 방해할 동기 및 은폐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다는 취지다.
노동계는 “범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며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란 논평을 내놨다. 유족들은 검찰 전면 재조사 촉구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충 수사로 하마터면 진실이 가려질 뻔했다. 그런데 대충 수사한 경찰을 수사한 경찰이 내놓은 결과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유족이 봤을 때도 석연치 않은 점이 금세 나온, 난도가 높지 않은 사건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 출동한 담당 경찰관들은 못 본 것인가, 아니면 대충 수사하고 사건을 종결시키고 싶었던 것인가. 대충 수사한 경찰을 수사한 경찰의 발표가 이런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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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진 기자
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