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여행’은 환경에 책임을 다하는 여행을 뜻한다.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여행자에게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취지도 있다. 일본은 ‘해외’란 단어를 붙이기 무색할 만큼 친숙한 여행지가 됐다. 하지만 ‘일본 에코 여행’은 낯설다. 기존 식도락, 쇼핑 천국, 자연경관 같은 매력에 지속 가능성이란 가치를 더한 일본 여행지 3곳을 다녀왔다.
● 버려진 섬에서 세계인 놀이터로
일본 오사카만 인공 섬 ‘유메시마’. 습기가 훅 끼치던 오사카 시내와 달리 바람이 청량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데 다른 공간에 온 것 같다. 이곳에선 10월 13일까지 ‘오사카 간사이 만국박람회(오사카 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산업폐기물 매립지였던 섬이 박람회 터로 선정된 이유가 있다. 오사카 엑스포 주제는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 디자인’. 버려진 섬을 되살려낸 유메시마야말로 생명과 지속 가능성이란 메시지를 전할 최적의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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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공식 캐릭터 ‘먀쿠먀쿠’. 붉은색과 파란색은 각각 ‘세포’와 ‘물’을 상징, 생명의 유연성과 지속성을 표현한다.
일본 오사카만 인공 섬 ‘유메시마’에서 열리고 있는 ‘오사카 간사이 만국박람회’. 세계 최대 목조 건물인 ‘그랜드 링’ 아래 공간은 그늘막, 지붕은 산책로 역할을 한다.
그랜드 링 아래 공간은 그늘막, 지붕은 산책로 역할을 한다. 에스컬레이터로 지붕에 오르니 그랜드 링이 품은 각국 파빌리온이 한눈에 들어온다. 섭씨 31도를 웃도는 날씨, 수백 명이 뙤약볕을 마주한 채 ‘링 둘레길’을 우직하게 걷고 있다. 지구촌을 발아래 두고 눈과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
국내·해외·시그니처 파빌리온은 모두 188개. ‘베스트 10’이 궁금해진다. 요시무라 사치코 엑스포 홍보 담당부장은 이 우문(愚問)에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관 등이 인기 있는 편이지만 엑스포에서 경쟁은 무의미하다. 각 관이 전하는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는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엑스포 꽃은 파빌리온이라지만 여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상시 공연과 분수쇼를 비롯해 파빌리온이 주관하는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최근 다섯 아이와 함께 엑스포를 다녀왔다는 시미즈 유이치 일본정부관광국(JNTO) 서울사무소장은 “‘많이 봐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엑스포의 의미를 느긋하게 되새길 수 있었다”며 “나름의 호기심으로 진지하게 파빌리온을 경험하려는 아이들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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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현 가미카쓰(上勝) 마을은 다른 의미로 에코 여행과 어울리는 곳이다. 오사카에서 이곳을 향해 차로 2시간을 달렸다. 어느 순간 사방이 온통 초록이다. 하늘을 덮은 산세 사이로 좁다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아래 빼곡한 삼나무 숲을 내려다보니 바닥이 아득하다.
가미카쓰 마을은 전체 면적의 88%가 숲이다. 인구는 지난해 기준 약 1300명.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한 번에 건너는 사람(약 2000명)보다 적다. 마을 인구 절반 이상은 65세 이상이다. 쇠락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한 이 산골 마을은 도전과 성장의 길을 걸으며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례 없는 한파가 일본 열도를 덮친 1981년. 가미카쓰 귤 농작은 전멸했고, 수입 목재가 주류를 이루자 목재산업도 쪼그라들었다. 재기의 씨앗은 지역 농업협동조합 막내 직원(농업지도원) 오코이시 토모지 씨 머릿속에서 싹텄다. 1987년 오사카 고급 식당을 찾은 손님이 음식에 놓인 장식용 나뭇잎을 집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잎사귀 프로젝트(葉っぱビジネス·핫파 비지니스)’를 떠올린 것.
도쿠시마현 가미카쓰 마을에서 전국으로 납품하는 잎사귀. 한 장에 100∼150엔 정도 한다. ⓒIRODORIco,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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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데 지루하지 않고 예스러우면서 트렌디하다. 산과 바다, 골목과 지평선, 낡은 주택과 세련된 카페를 동시에 품은 섬이라니….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간만에 ‘버킷 여행지’를 만났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가가와현 세토 내해 오기지마(男木島)와 메기지마(女木島) 얘기다.
크고 작은 섬들을 품은 세토 내해는 일본의 지중해라 불린다. 2010년부터 세토 내해 인근 섬과 연안 도시 17곳에서는 3년마다 ‘세토우치 예술제’가 열린다. 예술제 기간(100여 일)엔 섬과 섬을 오가는 관광객들로 온 내해가 들썩인다. 누적 관람객은 약 370만 명. 여섯 번째를 맞은 올해 예술제는 5, 8, 11월에 열린다.
섬으로 가는 페리는 다카마쓰(高松) 항에서 출발한다. 다카마쓰는 가가와현 현청이 있는 세토 내해 중심 도시다. 예술제 기간은 아니지만 다카마쓰 항 곳곳에 상설 전시물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제 도시답게 페리 외관마저 예사롭지 않다. 붉은 색동옷을 입은 듯하다.
고양이가 많아 ‘고양이의 섬’으로 불리는 오기지마 전경. 마을 곳곳에서 낯가리지 않는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세토 내해 오기지마 제방에 설치된 야마구치 케이스케의 ‘걷는 방주’. 세토우치 예술제의 상설 전시작으로 노아의 방주에서 착상을 얻었다.
도깨비 설화를 품은 섬 메기지마의 오니가시마 대동굴. 도깨비 조형물 옆에 가가와현 중학생 3000명이 만든 ‘도깨비 기와 프로젝트2’가 전시돼 있다.
세토우치 예술제는 섬의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폐기물 투기장 데시마(豊島), 제련소였던 이누지마(犬島) 등 환경 파괴로 버려진 섬에 이야기를 심어 세계적 관광지로 바꿨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방치된 섬을 되살린 전략은 ‘있는 것에 가치를 더하다’였다. 자연에 작품을 더해 매력을 높이고, 빈집을 개조해 전시장이나 레스토랑으로 활용했다.
오기지마 마을 정상에서 한 지역 주민이 섬 앞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세토우치 예술제는 고령자가 대부분인 지역 주민이 행사 전반에 관여한다.
글·사진 오사카·도쿠시마·가가와=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