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싱크홀 예방 소홀 지자체-정부 800억 들이고도 시민에 비공개 “안전조치 안하면 처벌” 법안도
지난해 9월 21일 오전 부산 사상구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 구간 인근에서 깊이 5m 규모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2대가 빠졌다.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서 대형 싱크홀 사고가 잇달아 시민 불안이 커지면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어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부산=뉴스1
25일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 일부개정안에는 시도지사가 싱크홀 안전지도를 제작하고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 의원은 “지반침하 예방은 단순한 안전 문제를 넘어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배경을 밝혔다. 같은 당 황명선 의원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보호에 필요한 싱크홀 정보의 경우 지자체장이 적극적으로 공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올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2동에서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30대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사망했다. 동아일보DB
싱크홀 지도 공개와 함께 지자체의 싱크홀 대응을 더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싱크홀 우려가 있으면 국토부가 지자체장에게 보강, 보수 등을 명령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싱크홀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하 안전 평가 전문가인 이재호 지원텍 대표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처럼 지반침하에 대한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서울시와 정부가 보유한 싱크홀 지도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부산 사상구에서 한 시민이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 현장 인근을 지나고 있다. 히어로콘텐츠팀
국토부가 만든 ‘지하공간 통합지도’
지하수-공동 정보 없고 접근 제한
서울-부산시 제작 지도도 상황 비슷
철도공사장 옆 3년간 14번 싱크홀
현장 본 전문가 “땅속이 갯벌 같아”
시민들 “눈앞 땅 꺼져도 상태 몰라”
지난달 28일 부산 사상구 감전동 새벽시장에서 상인회 관계자가 바닥에 난 균열을 가리키고 있다. 시장 상인들은 인근에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가 시작된 뒤 시장 바닥과 건물 기둥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히어로콘텐츠팀
이 주변에서는 최근 3년간 14차례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8차례, 올해는 3차례 있었다. 부산시는 지하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며 국비 5800만 원을 지원받아 2년 전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들었지만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땅이 12cm 가라앉아 4층짜리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사무실을 급히 이전한 주민도 있었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부산에서 만난 새벽시장 상인회 이복용 관리부장은 “눈앞에서 땅이 꺼지고 균열이 늘어나는데 시에서 하는 공사에 대해 우리가 뭘 알겠나.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과 일터 주변에서 자꾸 싱크홀이 발생하는데 부산시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최소한의 대비를 위해서라도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0일 오전, 부산 사상구 ‘사상~하단선’ 지하철 2공구 굴착공사 현장 바닥에 물이 흥건히 들어차 있다. 히어로콘텐츠팀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국토교통부가 서울 송파구 대형 싱크홀 사건 이후 2022년 만든 ‘지하공간 통합지도’에도 지하수,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 과거 싱크홀 이력 등이 빠져 있다. 지도에 표시된 지하시설물 위치와 실제 위치가 다른 곳도 여럿이었다. 게다가 국토부의 지도 자료는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다. 국토부가 승인한 일부 사업자에게만 종이 자료 형태로 잠깐 대여해 준다. 최근 싱크홀 사고가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자료 공개의 필요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역시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집값, 부동산 민심을 우려해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지도에는 지하수, 지질, 지하구조물 등 중요 요소들이 빠져 있어 싱크홀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8일 부산 사상구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 현장 인근 전봇대에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철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공사 현장 인근에는 이 같은 구조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히어로콘텐츠팀
부산시는 25일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이달 말 공동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 결과를 공개하고 시에 도로안전과를 신설해 지하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시가 공개한다는 GPR 자료는 ‘지반침하 위험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최대 지하 1, 2m 정도의 상황만 알 수 있다. 시는 싱크홀 사고를 신고한 시민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도에 지하매설물 현황 정도만 반영하고 있어서 실제 싱크홀 위험도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워 공개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도로함몰 안전지도’로 부르며 지반 탐사 우선 구간 등을 정하는 데 보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4월 13일 부산 사상구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 현장 인근 횡단보도에서 깊이 5m 규모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부산=뉴시스
임종철 부산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부산같이 지반이 연약한 곳이나 지하 개발사업이 활발한 대도시에선 싱크홀을 예방하기 위한 지도가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본보 제작 지도엔 “위험도 보여줘”
“지방자치단체가 지하안전평가를 기준과 원칙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유재성 고려컨설턴트 대표)
동아일보가 히어로콘텐츠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를 통해 ‘서울시 싱크홀 안전 지도’를 공개한 이후 전문가들은 싱크홀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지하안전협회는 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지반침하사고 예방 대토론회’를 열고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공개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굴착공사 전 시행하는 지하안전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명상 명동엔지니어링 대표는 “평가를 해보면 ‘지반이 안전하냐’고 물어보는 발주처는 한 곳도 없다. 공사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한 현장에서 설계 오류를 여럿 잡아냈지만 개선 요구가 묵살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자체 제작, 공개하고 국토교통부 서울시 부산시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싱크홀 자료의 문제점을 파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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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iginal.donga.com/project/series?c=0311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부산=공승배 기자 ksb@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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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