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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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2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행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호텔 주위에선 우익들이 확성기를 들고 “한국은 은혜를 모른다”며 혐한 시위를 벌였다.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한일 정상회담이 (3년째) 안 열리며 냉각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축사인지 지적인지 모를 연설을 했다. 이날 참석자 중에서 10년 후 일본 내각 서열 1∼4위가 총출동하고, 전직 총리 3명이 참석해 60주년 기념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질 걸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정상회담 3년째 안 열렸던 2015년
도쿄 특파원 시절이었던 10년 전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이라 할 정도로 험악했다. 과거사 문제로 정상회담이 3년째 안 열리며 한일 정상이 민주화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마주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행사 사흘 전 “국회 일정이 있다”며 50주년 일본 측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가와무라 간사장의 연락을 받은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 측 행사 참석을 확정하며 막판에 아베 총리의 마음을 돌렸다. 그래도 행사장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아 행사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일본이 강제징용 노동자의 아픈 기억이 있는 군함도(端島·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고 나서고, 한국이 이에 반대하며 양국 국민 감정도 악화됐다. 당시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 공동 여론조사에서 ‘상대국이 좋다’는 답변은 한국 5%, 일본 10%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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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얻은 ‘세 가지 교훈’
한일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얻은 교훈은 세 가지다.
먼저 정상 간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에 3년 반 만에야 한일 정상회담을 했고, 그해 말 ‘위안부 합의’까지 도출했다. 하지만 떠밀려 급하게 추진한 터라 이후 ‘부실 합의’ 논란에 휩싸였다. 정상 간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사과 편지 제안을 거절하는 등 후속 조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국내 여론은 더 악화됐다.
두 번째 교훈은 일본의 우익적 행보와 한국의 반일 선동이 둘 다 자해에 가깝다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고노 담화 재검토 등 아베 총리의 우익 행보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렀고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죽창가’를 부르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독립을 외쳤지만 대일 의존도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야심차게 발표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역시 미국의 압박으로 유야무야됐다.
마지막 교훈은 상호 교류가 호감과 이해를 높인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 간 방문자 수는 10년 전 584만 명에서 지난해 1204만 명으로 2배 이상이 됐다. 그동안 일본에선 한식과 K드라마, K팝이 보편화됐고 한국에선 일본 가수 콘서트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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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