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경기 연천 착한의견의 성모 수도원. 연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검은 옷의 수사(修士·수도원에서 공동생활하는 남성 수도자)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는다. 저녁 어둠이 내려앉은 성당 안을 춤추듯 일렁이는 촛불들. 지난달 29일 찾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경기 연천 ‘착한 의견의 성모수도원’ 저녁기도는 영화에서 본 중세 유럽 수도원을 연상케 했다.
지난달 새 교황에 오른 레오 14세가 몸담았던 곳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1244년 성 아우구스띠노(354~430)의 생활 양식과 수도회 규칙을 따르는 수도자들이 로마에서 첫 회의를 갖고 설립했다. 하지만 그 기원은 사제로 서품된 성 아우구스띠노가 수도자 공동체를 만든 4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세계 40여 개국에서 28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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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식사 준비 중인 수사들. 연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생활은 ‘심플’하다. 평일 기준 오전 6시 반 미사와 아침기도, 낮 기도(정오), 오후 5시 묵상과 저녁기도, 오후 8시 끝 기도가 끝나면 오후 9시 반 정도까지 공동 휴식 시간을 갖는다. 기도와 기도 사이 시간에는 각자의 공부나 업무를 본다.
교황 레오 14세는 2001년부터 12년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을 역임하면서 5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이기훈 수사는 “(교황은) 매우 소탈하고 유머가 넘치는 분”이라며 “한 번은 숙소가 모자라 인근 수녀원 숙소를 빌렸는데, 다음 날 아침 ‘이불에 깔려 죽을 뻔했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다. 수녀원에서 온돌방에 두꺼운 원앙금침 같은 이불을 제공했는데, 그런 이불을 덮어본 적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저녁기도 중인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수사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공동체 생활을 중시하며, 성 아우구스띠노가(354~430) 쓴 수도 생활에 관한 규칙서는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다른 가톨릭 수도회 규칙의 초석이 됐다고 한다. 연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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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착한 의견의 성모수도원’은 피정(避靜·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 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주로 가톨릭 신자를 받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비신자도 가능하다고 한다. 각종 볼거리와 프로그램이 많은 템플스테이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둠이 내린 호젓한 저녁 산책길. 개구리와 바람에 잎새 스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내 눈과 귀를 빼앗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 성당 창문 너머로 수사들의 신과 사람, 세상을 위한 찬미가(讚美歌)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도 누군가 간절하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 아닐까.
연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