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아침을 먹고, 호찌민에서 점심을 먹는다. 베트남이 15년 전부터 꿈꿔온 시나리오가 어쩌면 2030년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북쪽 하노이에서 남쪽 호찌민을 잇는 1541㎞ 길이 고속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베트남 최대 재벌 빈그룹의 가세로 탄력받기 시작했으니까요. 완공된다면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고속철도가 탄생할 겁니다. 베트남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세기의 프로젝트’ 남북 고속철도 건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030년이면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을 잇는 남북 고속철도를 탈 수 있게 될까? 아직 공식 이미지가 없어서 챗GPT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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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기업엔 100년에 한 번 있는 기회’
‘국가를 변화시키는 상징적인 프로젝트’
당초 베트남 정부가 예상한 사업비는 총 1713조 동(약 92조원). 이를 100% 국가 예산으로 조달해 2035년 남북 고속철도를 완공한다는 계획입니다. 베트남 한 해 GDP의 14%가 들어가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 사업인데요. 베트남 국회는 지난해 11월 이 계획을 승인했고요. 이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될 겁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국유기업 컨소시엄이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제시한 남북 고속철도 노선도. 하노이 응옥호이역에서 호찌민 투티엠역까지 총 1541㎞이고, 23개 여객역과 5개 화물역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시속 350㎞인 여객용 고속열차를 이용하면 전 구간 운행에 5시간 30분이 걸린다(5개역 정차시). 다만 화물열차는 속도가 훨씬 느릴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여객-화물이 혼합되는 노선이기 때문에 여객열차 속도를 시속 300㎞ 정도로 낮추는 게 맞다고도 지적한다. 여객-화물 열차 속도 차이가 너무 크면 위험할 수 있어서다.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초대형 인프라 사업을 국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직접 하겠다고 뛰어든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요. 제안 내용도 상당히 대담합니다. 빈스피드는 예상 사업비를 정부가 책정한 것보다도 10%가량 적은 1562조 동(약 84조원)으로 낮췄고요. 10년이던 예정 공사 기간은 무려 절반인 5년으로 확 줄이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2025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2030년 12월 완공한다는 초스피드 건설 계획이죠. 이후 빈스피드가 99년간 사업권을 유지하는 조건입니다.
주요 고속철도 노선의 공사기간 비교표. 만약 빈스피드가 공언한 대로 60개월 만에 남북 고속철도 완공에 성공한다면 이는 상당한 기록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래도 중국의 베이징-상하이 구간 건설 속도(38개월)를 깨진 못한다.
그런데 아무리 베트남 최대 재벌이라곤 하지만 이런 국가적인 사업을 일개 민간 기업에 맡겨도 될까요. 물론 민간투자로 바꾸려면 국회 승인을 새로 받아야 하는데요. 일단 베트남 정부는 빈스피드 제안을 매우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하긴, 애초에 정부 당국과 빈그룹이 긴밀히 소통한 끝에 나온 제안일 테니까요.
그런데 이 정부안은 국회에서의 격렬한 공개토론 끝에 부결됐습니다. 일당 독재국가인 베트남 역사상 의회가 정부 제출 안건을 거부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죠. 그만큼 560억 달러라는 엄청난 공사비가 드는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반감이 컸습니다. 2009년 베트남 GDP의 무려 53%에 해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일단 베트남 경제 규모가 4.5배로 성장했고요(2009년 GDP 1060억 달러→2024년 4760억 달러). 그 사이 인도네시아에선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가 생겼고(2023년 자카르타-반둥), 태국도 고속철도를 건설 중(2026년 예정, 방콕-농카이)입니다. 이웃 나라 라오스에선 중국과 연결되는 국제철도가 운행되고요(2021년 개통).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이웃 나라의 철도망 확장에 뒤질 수 없다는 경각심이 베트남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젠 고속철도 건설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건데요.
호찌민시의 새 관문이 될 롱탄 신공항 조감도. 올해 안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베트남공항공사
기술 면에서 현재 베트남이 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속철도와 관련한 어떤 기술도, 경험도, 인력도 모두 없고요. 철도, 차량, 신호 기술, 운영 솔루션 등. 모든 걸 다 제로에서 시작해야 하죠.
당연히 베트남 기업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고요. 해외 기업과의 파트너십은 필수입니다. 대신 베트남 정부는 제휴를 맺을 때 기술 이전을 요구해서 고속철도 기술을 내재화하겠단 계획입니다. 민자 건설을 추진하는 빈스피드 역시 “중국·독일·일본 등 철도산업 선도 국가 파트너들과 기술이전을 받고 베트남에서 기관차·객차·신호 및 제어 시스템을 생산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밝혔죠. 아마도 외국 기업과 현지 기업이 합작법인을 세우는 식으로 현지 생산을 하겠다는 걸로 보이는데요.
이번에 남북 고속철도 건설을 제안한 빈그룹의 팜녓브엉 회장은 베트남 최대 부자이기도 하다. 포브스 기준 세계 부자 순위는 300위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357위)보다 높다. 베트남 정부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베트남 요지의 부동산을 싸게 사들어 개발해 그룹을 일궜다. 팜녓브엉 회장 관련 내용은 이전 딥다이브 ‘빈패스트 전기차 편’에서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물론 안 될 거라고 좌절만 할 순 없겠죠. 베트남 철도청장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중국이 첫 번째 고속철도 노선 건설을 시작할 때, 슬로건은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현대식 기계와 장비를 기다리지 말자’였습니다.” 일단 베트남 국내 기업도 부딪혀서 하다 보면 중국처럼 기술을 습득하게 될 거란 뜻입니다. 일단 해보자는 거죠.
현재 베트남 언론은 중국과 일본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걸로 관측하는데요. 이 두 나라가 동남아시아 고속철도 시장을 놓고 매우 치열하게 경쟁 중이기 때문이죠.
2015년 인도네시아의 첫 번째 고속철도 프로젝트에서 세게 맞붙었던 두 나라. 당시 승자는 중국이었죠. 일본엔 매우 충격적인 패배였는데요. 하지만 비교적 짧은 거리(142㎞)인데도, 중국 고속철도 기술을 자바섬 열대 지형에 적용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공사기간이 예정의 2배인 8년으로 늘어났고요. 인도네시아는 두 번째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번엔 ‘품질’을 앞세운 일본과 손을 잡았습니다. 물론 일본 측이 상당한 대출 제공을 약속한 게 주효했겠지만요. (단, 프라보워 대통령 취임 뒤 예산 제약으로 아직 사업 승인이 나지 않음)
2023년 개통된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우쉬(Whoosh). 인도네시아 국유기업이 중국철도인터내셔널과 만든 합작법인이 건설했다. 노선 길이는 142㎞로, 전 구간 운행에 약 40분 소요된다. 신화통신 뉴시스
그럼 베트남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베트남은 하나의 긴 노선이기 때문에 중국, 일본 둘 중 한 곳만 파트너로 선택해야 할 겁니다. 사실 2010년 베트남 정부가 처음 추진했을 때만 해도 일본과의 협력 관계가 공고했는데요. 이후 중국도 기술을 엄청나게 발전시켰죠. 특히 하노이-호찌민 못지않은 장거리 고속철도를 단기간에 건설해 낸 경험이 있다는 점이 중국의 강점인데요.
하지만 중국 기술 채택을 가로막는 매우 큰 허들이 있습니다. 바로 베트남의 강한 반중 정서이죠. 실제 하노이의 첫 지상철은 중국 기술을 채택했는데요. 공사 시작부터 완공까지, 반대 여론이 엄청났습니다. ‘중국 기술은 낙후됐다’는 비판은 물론 ‘중국이 전철로 베트남 수도의 용맥을 막고 있다’며 타지 말자는 보이콧 운동까지 일어났으니까요. 지상철도 그 정도였는데 고속철도면 훨씬 더하겠죠. 아마 어떤 정치 지도자라도 이를 돌파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어찌 됐든 청사진만 덩그러니 있던 베트남 고속철도 사업이 빈그룹의 도발적 제안으로 속도를 낼 기세입니다. 물론 기술과 돈, 두 가지 면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고요. 본래 고속철도 사업이란 게 예산과 일정을 초과하기 일쑤인 법이기도 하죠. 하지만 100년에 한 번 나올 역사적인 프로젝트임엔 틀림없어 보이는데요. 한국 기업도 참여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 관심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15년 전 베트남 의회는 ‘고속철도는 사치 산업’이라며 정부의 건설계획을 부결시켰는데요. 그동안의 놀라운 경제성장 덕분에 이젠 베트남도 고속철도 건설에 나설 수 있게 됐죠. 고속철도 역은 나짱, 다낭 같은 대표 여행지에도 생길 예정이라니 기대되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베트남 정부가 ‘남북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하노이부터 호치민까지 1541㎞를 5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소요 예산은 약 92조원으로 책정됐지만, 최근 베트남 최대 재벌 빈그룹이 84조원의 예산으로 자기네가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베트남은 ‘2045년 고소득 국가 진입’ 목표 달성을 위해 대형 인프라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신공항, 고압 송전선, 원자력발전소 등을 건설 중이거나 계획했죠. 인프라 확충으로 경제의 레벨업을 꾀합니다.
-하지만 고속철도는 어려운 기술입니다. 기술이 전무한 베트남이 과연 어느 나라와 손잡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아마도 중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기사는 5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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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