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당시 백악관 행사에 참석한 윗코프(왼쪽). 워싱턴=AP 뉴시스
● 위기를 기회로 만든 승부사
윗코프와 트럼프 대통령의 인연은 약 4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에 58층짜리 ‘트럼프 타워’를 세워 유명 부동산 사업가가 된 1983년, 윗코프는 부동산 전문 법률회사(로펌)에서 막 일을 시작한 새내기 변호사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37세, 윗코프는 26세였다. 윗코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변호사 대 의뢰인 관계로 인연을 맺었다. 특히 늦은 밤 델리카트슨(주로 유대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우연한 만남 이후 가까워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갑을 두고 왔다”고 도움을 청하자 샌드위치를 대신 계산해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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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자 전쟁 협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윗코프(오른쪽)와 트럼프 당시 당선인. 팜비치=AP 뉴시스
1990년대 초반 미국 부동산 시장은 1987년 블랙 먼데이(미 증시 폭락) 여파로 얼어붙은 상태였다. 공실률이 치솟고, 개발 프로젝트가 중단된 틈을 타 윗코프가 승승장구했다. 1995년경부터 투자은행과 손잡고 맨해튼 중심가의 낡은 사무실을 헐값에 사들이며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했다. 불과 몇 년 만에 뉴욕의 여러 랜드마크까지 매입한 자수성가 사업가가 됐다. 당시 그가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는 평가와 “무리한 대출을 끼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그는 ‘터프 가이’를 좋아해 이 시절 경찰 출신 유명인 보 디틀과 할렘에서 어울렸다고 한다. 주간 뉴욕옵저버는 당시 윗코프의 책상에 책 ‘터프한 유대인’이 올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1930년대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한 유대계 갱단을 다룬 책으로 “유대인은 유약하다”는 미국 사회의 인식을 뒤엎는 책이었다.
윗코프는 1957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동유럽계 유대인이다. 이스라엘군(IDF)에서 사용하는 특공무술 ‘크라브마가’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의 인간적 매력과 사업 수완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그를 곁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윗코프의 깜짝 발탁 직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를 두고 “탁월한 협상가이자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화력을 갖춘 호감형 인물”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서 연설한 윗코프. 버틀러=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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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
디애틀랜틱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봄 중동 특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함께 셋이 골프를 치던 도중 나온 이야기였다. 그레이엄 의원이 윗코프에게 “상원의원에 도전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윗코프가 “전혀 관심이 없고, 중동 문제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브,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하라”고 화답했다. 중동 특사를 자처한 이유는 요절한 장남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윗코프는 디애틀랜틱 인터뷰에서 “나의 잃어버린 아들 앤드루가 나를 이 길로 인도했다”며 “이 일은 정말 가치 있고 절대 질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선행으로 승화하는 유대인의 미츠바(mitzvah) 전통이 발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인지 인질 가족들과 정서적 유대가 깊다. 백악관에서 면담을 기다리던 인질 가족들을 데리고 유명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한 일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질 가족들과 만나 “이스라엘이 전쟁을 무의미하게 장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로 인질 문제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1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인질 광장에서 인질 가족과 포옹하고 있는 윗코프(왼쪽 세번째). 텔아비브=AP 뉴시스
이에 놀라운 결단을 내렸다. 이스라엘을 배제하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직접 접촉한 것. 트럼프 대통령의 승낙 하에 윗코프가 전례 없는 시도에 나서자, 네타냐후 총리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런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토록 이스라엘과 분리된 정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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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병원에서 알렉산더(오른쪽)를 만나 반기고 있는 윗코프. 사진 출처 백악관 중동 특사 X
● 대통령이 전폭 지지하는 대담한 외교관
4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윗코프는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에는 ‘외교 협상 대리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윗코프의 협상가로서의 자질을 높게 평가해 그에게 중책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윗코프 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한 것. 지난달 25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회담한 윗코프. 둘이 만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후 네번째다. 모스크바=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올 2월 의료용 대마초 소지로 러시아에 구금된 미국인 교사 마크 포글의 석방을 코앞에 두고 문제가 생겼을 때 윗코프는 놀라운 선택을 내렸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포글을 데리고 전용기에 탑승해 출발을 앞두고 있는데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급히 전화해 “맞교환할 러시아인 수감자가 후환이 두려워 본국 송환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하자, 윗코프는 혹여 일이 틀어질까 러시아 측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즉각 전용기를 이륙시켰다고 한다.
올 2월 네타냐후 총리와 백악관 정상회담에 배석한 윗코프(오른쪽 세번째). 워싱턴=AP 뉴시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법무장관이던 동생 로버트를 통해 주미 소련 대사와 비공식 외교 채널을 가동해 위기를 넘겼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에도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가 1971년 중국 베이징에서 저우언라이와 극비리에 접촉해 이듬해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초석을 놨다.
윗코프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트럼프 1기 백악관 고문이던 제러드 쿠슈너와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다. 쿠슈너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아랍국과의 수교(아브라함 협정)를 주도했다.
지난달 17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회담에 참석한 윗코프(왼쪽)와 루비오 국무장관. 파리=AP 뉴시스
전문성은 어떻게 보완하고 있을까. 특유의 친화력으로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등 내부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프랑스의 행동주의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 등 유럽권 인사들에게 가자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한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와 서적도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라는 강한 비판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쿠슈너는 윗코프가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협상에서 에마뉘엘 본 프랑스 대통령 외교수석(오른쪽)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윗코프. 파리=AP 뉴시스
“사업에서 얻은 교훈은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거래란 결국 양측 모두 어느 정도 공정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평생 그 일을 하며 살아왔다.”
24화 요약: 장남을 약물로 잃은 유대계 자수성가 사업가 스티브 윗코프는 중동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 전면에 나섰다. ‘그림자 국무장관’으로 통하며 “외교는 거래”라는 철학을 가졌다. 외교 관례를 깨는 파격 행보를 이어가는 그는 각종 난제에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
https://original.donga.com/2025/trump_policy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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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