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희 산업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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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대기업 임원에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모두 도입하겠다고 밝힌 주 4.5일 근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쓴웃음뿐이었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그 임원은 회사가 비상 경영에 들어가는 바람에 주말에도 하루 출근하는 주 6일 근무를 하고 있었다. 한쪽에선 대선 공약으로 주 4.5일제가 거론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 임원들이 주말까지 반납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과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악화로 한국 기업들은 수출과 내수 시장 모두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을 필두로 지난해부터 SK, 롯데, HD현대 등의 대기업 계열사에서는 임원들이 비상한 각오를 다지며 주말에 출근하고 있다. 물론 오래 일한다고 반드시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또 임원과 직원들은 근로 계약이 달라 근무 시간을 비교하는 것도 무리다. 하지만 주 4.5일제든, 주 4일제든 노동시간 단축을 거론하기 전에 우리 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근무일이 줄어들면 그 노동력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는 주 52시간 근로제로 묶여 탄력적인 집중 근무가 어렵다. 반도체 등 특례업종은 최대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예외가 있지만 6개월 단기인 데다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는 수출 물량이 갑자기 증가해도, 비상 경영을 해야 할 위기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한다. 경제 5단체가 대선을 앞두고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의 범위를 더 폭넓게 개선해 달라고 정치권에 요청한 것도 이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주 4.5일제가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시행의 전제 조건으로 노동 개혁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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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향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늘려 실적을 채우는 식의 노동집약적 경제구조를 가져갈 수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는 산업계든, 노동계든 이견이 없다. 하지만 기초체력이 부족한 환자를 억지로 수술대에 올릴 수는 없다. 포스코는 선제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했지만 철강업 불황으로 고전하다가 지난해 임원과 팀장에 대해 주 5일제로 복귀했다. 표만 의식해 주 4.5일제를 강행했다가 국가 전체가 포스코처럼 백스텝을 밟을 수는 없다. 설익은 공약으로 표심을 자극하기보다 후진적인 노사 관행을 개혁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탄탄히 할 대통령이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
한재희 산업1부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