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 결성 뒤 한 번도 모이지 않고… 단체대화방도 없이 책으로만 대화 “앉아서 쓰면 다 티가 난다” 공감대 플랫폼업체의 별점에 전전긍긍 등 발품 팔아 노동자 애환 생생히 그려
동시대 노동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월급 사실주의’ 문학 동인. 2023년부터 매년 소설집을 내고 있다. 올해 소설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에 참여한 예소연 김동식 조승리 이은규 황시운 황모과 서수진 윤치규 작가(위쪽 왼쪽부터). 문학동네 제공
1일 출간된 소설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문학동네)에 수록된 황시운 작가의 단편소설 ‘일일업무 보고서’의 줄거리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일의 쓸모’에 대한 고민을 다루면서, 실제로 장애인 재택근무를 겸업하는 작가의 경험도 담겨 묘사가 핍진하다.
‘내가 이런 데서…’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취지로 출범한 문학 동인(同人) ‘월급 사실주의’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장강명 작가가 2022년 6월 김의경, 정진영 작가와 합심해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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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라지다시피 한 한국 문단의 동인이 등장했단 점에서 반갑지만, ‘월급 사실주의’는 상당히 느슨하게 운영된다고 한다. 결성 이래 단 한 번도 모이지 않았고, 단체대화방조차 없다. 모두 의도적으로, 서로가 만나는 동호회가 아니라 책으로 말한다는 취지다.
올해 소설집은 황 작가를 포함해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등 8명이 참여했다. 새로운 구성원만큼 다루는 현장도 다양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모과 작가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예 작가는 플랫폼 업체의 별점에 전전긍긍하는 등 노동자의 애환을 그렸다. 조 작가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서 작가는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다뤘다.
다양성을 담아내는 동인 ‘월급 사실주의’에도 원칙이 없진 않다. 발품을 팔아 현장감 있는 소설을 쓴다는 목표가 있다. 원년 멤버인 정 작가는 “앉아서 쓰지 말자, 앉아서 쓰면 다 티가 난다는 게 공감대”라며 “동인 소설집 나올 때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이렇게 많구나’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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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