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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최고령 최고경영자(CEO)는 94세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버핏은 30대 중반이던 1965년 버크셔를 인수했는데, 이를 두고 훗날 “인생 최악의 투자 결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사양산업이던 섬유회사를 싸 보인다는 이유로 헐값에 사들인 게 실패였다는 것이다. 버핏은 섬유 사업에서 손을 떼고 버크셔를 세계 최대의 투자회사로 일으킨 뒤에도 “끔찍한 실수를 상기시키는 상징”이라며 회사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포천 500대 기업 CEO들의 평균 나이가 57세, 평균 재임 기간이 7년인 걸 감안하면 버핏의 뒤를 이어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달하는 ‘가치투자의 본산’을 누가 이끌지가 늘 관심사였다. 버핏의 후계자는 2021년 우연찮게 공개됐는데, 버핏이 한 인터뷰에서 “오늘 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내일 아침 경영권을 인수할 사람은 그레그가 될 것”이라며 그레그 에이블 비(非)보험 부문 부회장을 지목했다. 그러면서도 은퇴 계획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데 버핏이 3일 그의 고향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60년간 지켜온 CEO 자리에서 올해 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후임자인 에이블을 포함해 회사 이사진도 몰랐던 깜짝 은퇴 발표였다. 해마다 5월 초 열리는 버크셔 주총에는 버핏의 투자 철학과 지혜를 듣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투자자들이 몰려드는데, 올해는 4만여 명이 운집해 전설적인 투자자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1분여간 기립 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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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버핏은 올 들어 세계 억만장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산을 늘렸다. 다들 ‘트럼프 랠리’에 취해 있을 때 애플 같은 대형 기술주 주식을 내다팔고 채권과 현금 자산 비중을 크게 늘린 덕분이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다. 버핏의 자산은 현재 230조 원을 넘어섰는데, 이 돈의 95%가 60세 이후에 형성됐다고 한다. “투자 원칙의 첫 번째는 돈을 잃지 말라, 둘째는 첫째 원칙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버핏의 투자 철학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혼돈의 시대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