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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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철렁했어요. 우리 동네에서도 발생하다니, 전화도 막 오더라고요.”
서울 마포구 대장주로 통하는 한 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의 말이다. 13일 이 아파트 앞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일대 차로에 땅꺼짐(싱크홀)이 발생했다. 그는 “다행히 크기가 작아서 안심하는 분위기”라며 “구멍이 큰 지역은 공포심에 매수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명 사고 우려가 아니라 집값 하락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한 강동구 명일동, 13일과 14일 연이어 싱크홀이 생긴 부산 사상구 학장동과 감전동 등의 중개업소들에도 “싱크홀 때문에 집값 떨어지냐”는 전화가 잇따랐다고 한다. 싱크홀 원인이 되는 동공(洞空)의 30% 정도가 강남권에 집중됐다는 서울시 조사도 화제다.
안전보다 부동산 악영향부터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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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뿐만이 아니다. 사상구에선 지난해 9월 깊이 8m의 싱크홀에 트럭이 추락하는 등 2023년부터 최근까지 싱크홀이 14개나 발생했다. 부산시 역시 사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사고는 반복됐다. 11일 땅꺼짐이 발생한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현장에 대해서도 수년 전부터 지하수로 지반 침하가 우려된다는 경고가 제기돼 왔다.
최근 싱크홀 사고들이 인재(人災)란 비판이 커지자 지자체들은 대책을 쏟아냈다. 서울시는 싱크홀 지도를 제대로 만들고, 대규모 공사장에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GPR 탐사와 모니터링 강화안을, 경기도는 전문가 집단을 활용한 공사현장 안전 점검 계획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 싱크홀 예측을 내세운 지자체도 있다.
상식부터 채워야 땅이 꺼지지 않아
그러나 보여주기식 대책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GPR 조사는 지표면으로부터 2m 깊이의 지반 정도만 탐색할 수 있다. 명일동 같은 깊이 10m의 대형 싱크홀은 찾아내기 어렵다. 그간 싱크홀에 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2014년부터 10년간 전국에서 싱크홀 2085개가 발생했다. 지자체와 정부가 싱크홀을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안전문제로 여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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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조사 과정과 위험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은 포털 등을 통해 싱크홀 발생 이력과 위험 정도를 실시간으로 공개한다. 일본과 영국 또한 지반안정성 지도를 시민에게 제공한다. 물론 싱크홀 위험 지역 정보가 공개되면 일부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보를 감추면 오히려 싱크홀 포비아(공포증) 확산으로 사회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선 ‘위험한 동네로 인식되면 집값이 하락한다’며 싱크홀을 봐도 쉬쉬하려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다고 한다.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안전이 최우선’이란 상식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땅은 계속 꺼질 수밖에 없다.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