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기자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에코는 한 수필에서 그런 유의 질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다 읽은 책을 도대체 왜 책장에 꽂아두겠냐’는 거였다. 그의 반문은 책장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통념을 뒤짚는다. 다 읽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은 엄밀히 말해서 죽은 책장이다. 그런 책장은 사냥의 전리품을 박제해 진열한 것처럼, 오래전 독서의 추억과 성취감을 상기시키는 용도로 책을 활용한다. 하지만 에코처럼 현재 읽는 책,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은 책장은 읽기를 멈추지 않는 탐독가들의 지적 팽창력이 꿈틀대는 미지의 숲이다. ‘살아 있는’ 책장이다.
광고 로드중
이를테면 듀이는 책 정리업계의 고전적 슈퍼스타이고, 도서관에 들락거리는 걸 삶의 낙으로 삼아온 많은 탐독가들에게 ‘무릇 교양인의 책장이란 주제에 따라 정리돼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 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책을 반드시 주제에 따라 정리하라는 법은 사실 없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란 별명을 가진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알베르트 망구엘은 ‘밤의 도서관’에서 책을 가나다순, 지역이나 국가, 표지 색깔, 책의 크기와 장르뿐 아니라 심지어 구입일자와 출판일자에 따라서도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랭 드 보통은 미술관이 예술 본연의 기능인 ‘치유와 구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구체적 작품을 통해 균형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전시실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책장 정리에도 유효한 통찰을 준다. 예를 들면 ‘영혼의 치유와 회복’이라는 감정선에 따라 책을 분류해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 들었던 사례도 흥미롭다. 시인 출신인 한 출판인은 침실 책장에는 무조건 시집만을 비치해 둔다고 했다. 그 사적이며 신성한 회복의 공간에는 ‘순도 100%’ 시의 언어가 아닌 책은 감히 책장 한 장 들이밀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거실에는 인테리어 효과를 낼 수 있는 화집이나 디자인북 등 화려하고 큰 책을, 서재에는 검토해야 할 책들을 둔다고 했다.
광고 로드중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