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증시 급락, 전국적인 반(反)트럼프 시위 등에 직면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빠르게 번지는 홍역으로 또 다른 어려움에 처했다. 보건 당국이 2000년 “홍역 근절”을 선언했음에도 올 들어 곳곳에서 홍역이 번지면서 6일 기준 3명이 숨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남부 텍사스주에서 각각 6세 여아 케일리 페어, 8세 여아 데이지 힐드브랜드가 홍역으로 숨졌다. 인근 뉴멕시코주에서는 이름과 성별이 알려지지 않은 성인이 사망했다. 3명 모두 홍역 백신을 맞지 않았다. 미국 내 홍역 사망자 발생은 10년 만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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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미접종자 3명 사망
CDC에 따르면 4일 기준 올해 미국 50개 주 중 22개 주에서 총 642건의 홍역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지난해 전체로 285명이 감염되고 아무도 숨지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감염자, 사망자 모두 훨씬 많다. 환자 중 백신 미접종자 비율 또한 지난해 89%였지만 올해 97%로 늘었다.
특히 50개 주 중 인구가 두 번째로 많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세가 강했던 텍사스주에서만 이 중 약 77%(499건)가 발병했다. 주 보건당국은 이번 사태가 최소 1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텍사스주 사망자 2명은 모두 인구 약 27만 명의 북부 소도시 러벅 인근에서 나왔다. 이 일대에는 개신교의 소수 종파 ‘메노파(Mennonites)’ 신자가 많다. 정보기술(IT) 사용을 제한하고, 백신 접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사망자와 가족들이 메노파 신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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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오른쪽)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세미놀에서 홍역에 걸렸던 어린이가 숨진 후 라인랜더 메노나이트 교회에 도착하고 있다. 백신 회의론자인 케네디 장관은 홍역 진원지 방문 후 “백신 접종이 홍역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2025.04.07. 세미놀=AP/뉴시스
홍역 확산은 백신 접종률 감소와 관련이 깊다. CDC에 따르면 지역사회 주민 95% 이상의 백신을 맞아야 집단 면역이 생긴다. 하지만 텍사스주의 홍역 백신 접종률은 94.3%로 아직 이 기준에 못 미친다. 플로리다, 오클라호마, 조지아 주 등의 접종률 또한 88%대에 불과하다.
● 보건 예산 삭감 등이 화 키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예고된 참사’로 본다. 강도 높은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건복지부 및 산하기관에서 최소 1만 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또 홍역 백신 등 팬데믹 대응 자금 110억 달러(약 16조 원)의 지급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국(FDA)의 백신 관련 회의, 백신 홍보 캠페인 등도 모두 무기한 연기됐다.
케네디 장관을 보건 수장으로 발탁한 것 또한 적절치 않은 인사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그는 지난달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텍사스주의 홍역 유행이 ‘영양실조’ 때문이라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했다. 특히 “비타민A, 비타민D가 풍부한 식이 보조제를 섭취하는 홍역 치료 임상 시험을 진행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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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도 집권 1기 코로나19 사태 당시 ‘살균제 인체 주입’을 주장해 큰 비판을 받았다. 마이클 오스터홈 미네소타대 전염병학자는 NYT에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계속 허위 정보를 퍼트리는 반(反)백신 세력”이라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