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거짓진술, 재판방해 아니면 無불이익 제도적으로 거짓말에 관대한 한국 사회 지도자는 평균 한국인보다 더 정직할 의무 정치 개혁은 허위와 거짓말 저항부터 시작
김승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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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이 4일 정해진다. 파면될지, 복귀할지 기대와 전망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제는 정치의 정상화를 말할 때가 왔다.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할 최고위 리더의 거짓말은 정치를 빠르게 황무지로 만들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거짓과 허위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제안한다. 그동안처럼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심리 도중 국회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한 대상이 의원인지, 인원인지 모호하게 말하다가 ‘탄핵 공작설’을 꺼냈다. 혼자만 아는 진실은 깊이 숨겼다. 윤상현 의원이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인 줄 몰랐다고 답변했다가, 명태균의 통화녹음 공개로 체면을 구겼다. 몇 년 전 어느 대법원장이 정파적 발언을 부인하다가 음성녹음이 공개됐던 일과 판박이다. 김건희 여사가 했던 “당선되면 내조만 하겠다”는 약속은 실소를 낳았다. 국면 탈출용이란 걸 윤 대통령 부부가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에 가까이 갔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선 유죄,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대장동과 백현동 파문 초기 “마치 골프를 친 것처럼 (당시 야당이) 사진을 공개했다” “국토부가 협박했다” 등의 발언을 한 게 거짓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번지며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허위 발언 여부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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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에 가려졌지만,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3월 추가로 기소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제도적으로 거짓말에 관대하다는 걸 일깨워 줬다. 구속 중인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구상과 관련해 800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2심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해 가며 진행했다고 진술했다가 1심 재판이 끝날 무렵 번복했다. 수원지검의 ‘연어 술 파티’ 회유 주장이 이때 나왔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지만 일단 1심,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술 파티 주장은 배척됐지만, 이 전 부지사는 손해 본 게 없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거짓일지라도 재판 방해에 이르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돼 있다. 제3자인 증인의 위증은 처벌하지만, 자기 방어 땐 면책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사안을 국회로 가져가 청문회를 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전 부지사는 법정에서처럼 ‘연어와 소주로 회유당했다’고 주장했다. 법정 발언은 처벌할 수 없던 검찰은 선서를 해 증인이 된 이 전 부지사를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판사들은 “형사 법정은 거짓말 경연장”이란 말을 종종 한다. 그럼에도 감옥 가는 걸 피하려는 자기방어 본능은 처벌할 수 없다는 인지상정과 거짓 진술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두면 ‘자백을 강요하는 셈’이라는 논리로 이 법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다르다. 1990년대 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때 드러난 대로다. 클린턴은 연방대배심 앞에서 “성적(性的)인 관계는 없었다”고 말했다가 위증과 사법 방해죄로 처벌을 받을 뻔했고, 실제로 미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 탄핵 사유는 인턴 직원과 맺은 성적 접촉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미국에선 형사 피고인도 증인선서를 한 뒤라야 법정에서 진술이 허용된다. 위증 처벌을 감수할 때 자기방어를 허용한다는 의미다. 거짓을 단죄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에서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은 더 모욕적으로 여겨진다.
우리 형사소송법을 당장 바꾸자는 말은 꺼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범법자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적 영역에서 정직함에 가치를 더 두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곳곳에서 목격되는 부조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의 거짓이 반복되지만, 정치인 가운데 이 문제를 개탄하는 일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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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