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취약점 드러난 재난약자시설 노인-장애인들 신속 대피 어려워 자체 진화장비 의무화 등 대책 시급
“어르신들의 경우엔 휠체어를 타거나 와상 환자가 많아 대피 차량 탑승까지 걸리는 시간이 일반인들의 10배 이상이에요. 이번 산불을 계기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경북 영덕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푹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요양시설 어르신들은 휠체어나 침대에 누워 계시다 보니 대피 차량도 한 사람당 하나씩 필요하다”면서 “이동 시에도 요양보호사나 도우미도 각각 필요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북 지역 곳곳을 불태웠던 산불이 28일 149시간 만에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노인과 장애인 등 신속한 대피가 어려운 ‘재난약자시설’의 안전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 영덕군의 한 요양병원에 있다가 산불에 사망한 3명 역시 모두 거동이 불편한 80대였다. 경북 의성군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 다른 곳으로 어르신들을 신속히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건강이 악화될 수 있어 무작정 대피를 시키는 것도 걱정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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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요양병원 등 시설이 산속 깊이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자체 화재 진압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을 1층에만 배치하면 신속한 대피가 가능하다”며 “옥외 소화전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해 화재 발생 시 자체적으로라도 신속하게 대처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도 이번 산불에서 확인된 재난약자시설의 취약점을 적극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통상 조경 때문에 요양시설에 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은데 불에 잘 타는 소나무, 침엽수 대신 키가 작고 불에 잘 안 타는 나무를 심도록 안내 중”이라며 “또 화재 발생 시 소방차 도착 전까지 어느 정도 불을 진압할 수 있게끔 건물 상단에 스프링클러 등을 설치하는 등 장비를 확충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도 요양병원 등에 대해 24시간 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산불 발생 시 입소자들을 선제적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안동=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