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되어 있다. 2025.03.26. 뉴시스
27일 오전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장례식장. 어머니 이모 씨(100)의 빈소를 지키던 막내아들 김모 씨(65)가 눈시울을 훔치며 말했다. 김 씨는 8개월 전 어머니를 자신이 사는 부산으로 모셨지만, 3주 전 어머니는 “답답하다”며 원래 살던 영덕읍 석리로 다시 돌아갔다. 어머니는 26일 산불이 마을을 덮칠 때 대피하지 못했고 그날 오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 13년 경력 진화대원, 귀가 도중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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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27일 경북 의성군 동변1리마을 인근에서 산풀 피해를 입은 우사에 살아 있는 소가 쉬고 있다. 2025.3.27/뉴스1
의용소방대원인 신 씨의 큰아들(47)은 “아버지는 가족밖에 모르고, 10원 하나 허투루 쓰지 않던, 매사에 성실하던 분”이라며 “남동생이 내년 봄에 결혼하는데 이렇게 가셔서 너무 허망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신 씨의 큰아들 역시 25일 영덕에서 산불을 진압하느라 아버지와 통화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같은 지역에선 80대 노부부가 대피 도중 참변을 당했다. 26일 오후 영덕군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큰아들 이모 씨(60)는 “25일 오후 8시 40분경 부모님이 조카와 통화하면서 ‘불은 안 보이는데 연기가 꽉 찼다’고 하셨다고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씨는 “당연히 대피하셨을거라 생각해서 대피소를 다 뒤지고, 주무시는 어르신들 얼굴에 불빛을 비춰가면서 부모님인지를 확인했다”며 “다시 집에 가보니 부모님이 누워계셨고 움직이질 않으셨다”고 말했다.
● “아직 아빠 엄마랑 하고 싶은 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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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산불이 덮친 경북 영덕군 축산면에 있는 주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영덕군에는 25일부터 강풍을 타고 확산되면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2025.3.27/뉴스1
권 씨는 “거의 한 평생을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살아 그리움이 컸는데 앞으로 이 그리움을 어떻게 하냐”며 “동생이 아버지에게 선물해 드린 차를 보니 500km밖에 못 탔다. 사고 나지 말라고 같이 고사를 지낸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오열했다. 권 씨의 외삼촌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누나를 구하러 갔지만 여기로 가면 저기 도로로 가라고 하고, 또 그곳으로 가면 다른 도로로 가라고 하는 바람에 누나를 구하지 못했다”며 “통제가 잘 됐다면 누나를 구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산불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는 경북 청송군 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분향소에는 국화 수십 송이와 산불로 희생된 이들의 명패가 차례로 놓여져 있었다. 이날 합동분향소엔 윤경희 청송군수와 경북 청송경찰서장 등이 방문해 사망자들의 고인들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청송=임재혁 기자 he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