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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취임식 연설에서 선거 구호였던 “시추하고, 시추할 것(We will 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 2만 명이 모인 워싱턴 경기장 ‘캐피털원아레나’로 이동해선 파리 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에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탈퇴가 공식화되면 미국은 이란, 리비아, 예멘 등과 파리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4개 나라가 된다.
▷파리협약은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내 상승으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각국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하는데 미국은 2035년까지 2005년의 61∼66%를 감축하기로 했다. 2017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낙후된 공업도시인) 피츠버그 시민을 대표하기 위해 선출된 것”이라며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협약 발효일부터 3년 이후 유엔에 탈퇴를 통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기 내내 협약 당사국으로 남아 있었고 2021년 2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재가입을 선언했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파리협약을 탈퇴한 적은 없는 셈이다.
▷물론 파리협약 탈퇴 없이 NDC를 지키지 않더라도 제재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트럼프 1기에선 그의 탈퇴 선언이 석유와 석탄 기업이 포진한 텍사스와 웨스트버지니아주, 자동차 산업의 부활을 기대하는 러스트벨트 등 핵심 지지층을 향한 정치적 수사로 해석됐다. 이번엔 다르다. 탈퇴 통보 이후 1년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의 인공지능(AI) 기술 경쟁 등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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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를 차지한다. 미국이 파리협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고, 각국이 앞다퉈 당장의 이익만 좇으며 장기적인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국제 협력의 틀도 무너질 것이다.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 ‘에너지 빈국’인 한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