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서 핫팩과 도시락 등을 나눠주던 김공헌 씨(56)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찬성 집회에 준비된 보온물품 같은 것들을 허락도 없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반면 근처에서 윤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측 자원봉사자는 “젊은 커플 한 쌍이 와서 핫팩을 줬더니 받자마자 휙 돌아서서 웃으며 탄핵 찬성 집회 쪽으로 가버렸다”고 분개했다. 그는 “우리 측 참가자들을 위해 열심히 마련한 건데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 “핫팩 갖고 튀어” 상대 집회 물품 ‘보급 침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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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 집회 주최 측은 참가자들을 독려하고 추위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음식, 보온 용품 등을 무료로 현장에서 나눠주고 있다.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는 스티로폼, 몸에 두를 수 있는 비닐이나 보온용품, 끼니 해결용 컵라면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를 일부러 가져가 상대 집회에 조금이나마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이런 행동을 권유하기도 한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반대편 집회 물품을 뺏어오자’는 취지의 대화가 오갔다. 이 대화방에서 ‘재명아 감옥가자’라는 이름의 참가자는 “좌파 (집회)에서 오뎅 다 먹고 탄핵 반대 집회로 넘어가는 게 베스트”라고 올렸다. ‘부정선거 구속’이라는 이름의 이용자는 “좌파 보급 뭐 있어요? 뺏어가게요. 몰래”라고 묻기도 했다.
● 컵라면 나눠주며 ‘사상 검증’도… 경찰 “절도죄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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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양측의 마찰로 번질 우려도 지적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극단 감정들이 점층화해 이성이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가장 우려되는 건 절도에서 그치지 않고 폭력으로 비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지금은 사소한 규모의 행동이라도 이 같은 극단적인 적대감이 이어지면 마찰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행위는 형법상 절도죄로 처벌 받을 소지도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상대편 집회에서 쓸 목적으로 갖다놓은 것을 다른 의도로 가져간 건 절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서 제지하는 애매하다는 의견도 있다.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물품을 가져간 뒤 ‘방금 마음이 바뀌어 지지 진영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면 범죄를 입증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