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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너 자신을 알려라” 인플루언서, 현대의 자화상

입력 | 2024-04-13 01:40:00

팬데믹 후 ‘황금알 낳는 거위’… 직접 겪은 인플루언서의 세계
구독자 수 신경쓰다 일상 무너져… 자극적 콘텐츠에 회의 빠지기도
연결-노출돼야 살아남는 현대인…온전한 삶 위해 가끔은 단절돼야
◇인플루언서 탐구/올리비아 얄롭 지음·김지선 옮김/448쪽·2만3000원·소소의책



미국 키즈 유튜버인 라이언 카지는 13세에 불과하지만 유튜브 구독자가 368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라이언 카지 유튜브 화면 캡처


“모든 인플루언서가 구독자 0명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느 해 8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인플루언서 강의. 유튜브에서 전자 악기와 위스키를 주로 리뷰하는 유명 인플루언서인 강사 네이선(가명)이 이렇게 말하자 참가자 70명의 눈빛이 반짝였다. 강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누구나 유명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참가자들은 13∼17세였다. 친구들과 뛰놀거나 수학 공부를 하는 대신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이었다. 강사는 각종 팁을 전수했다. 가명은 쉽게 검색되고 발음하기 쉬운 것으로 정해야 한다. 영상을 편집할 땐 끊김이 없도록 한다. 침묵이 길면 구독자가 떠난다. 가장 중요한 건 팬 관리다. 구독자들이 댓글로 관심 있는 주제를 표하면 이를 즉각 수용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처음에 여러분의 채널은 여러분을 위한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구독자를 위한 것이 됩니다.”

책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하며 영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의 실상을 파고든 인문학서다. 영국의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인플루언서를 인터뷰하고, 직접 인플루언서 시장에 뛰어들어 겪은 이야기를 실감 나게 담았다.

이런 사진 하나 올리면 16억 원 미국 배우 티모테 샬라메의 연인으로 알려진 미국 뷰티 인플루언서인 카일리 제너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4억 명에 달하고 자신의 화장품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사진 출처 카일리 제너 인스타그램 

바야흐로 인플루언서의 시대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엔 5000만 명 이상의 인플루언서가 있다. 전업 인플루언서도 200만 명에 달한다.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난 건 그들이 거두는 어마어마한 수익 때문이다. 미국 유튜버인 라이언 카지는 2020년 광고 수익으로 2950만 달러(약 402억3000만 원)를 벌었다. 미국 인플루언서인 카일리 제너는 1개의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120만 달러(약 16억4000만 원)를 받는다. 팬데믹을 거치며 인플루언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저자도 인플루언서에 도전한다. 인플루언서 수업을 듣고,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아침마다 달린 뒤에 ‘#동기부여’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영상을 올렸다. 우유를 사러 가는 길에 예쁜 하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서재에서 글을 쓰며 스트리밍을 열고 구독자들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키보드 소리마저 녹음해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으로 올렸다.

하지만 유명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다. 미친 척하고 길거리에 누운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반응은 미미하다.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인플루언서끼리 몰래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꼼수도 부린다. 가짜 구독자를 돈 주고 살까 고민하다가 갑작스레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찾아온다. 어느새 동영상으로 올리기 쉽게 말을 짧게 하고, 매 순간 구독자가 늘어나는지를 신경 쓰다가 일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기에 몰두하는 동료 인플루언서를 보며 회의감에도 시달린다. 현재 저자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800명이 안 된다.

저자는 인플루언서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평가한다. 여가와 노동의 경계가 흐려지고, 자신의 정보를 온라인에 더 많이 공유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인플루언서가 조금 더 극단적으로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 일상을 SNS 게시물로 올리곤 하염없이 ‘좋아요’가 눌리기를 기다리는 게 우리 모습 아닌가. 물론 늘 ‘온라인’ 상태로 연결된 시대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은 ‘오프라인’ 상태로 단절돼야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킬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