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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0km 방역울타리의 역설… 돼지열병은 못 막고 산양만 잡아[에코 포커스/한상훈]

입력 | 2024-04-09 23:30:00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차단”
환경부-지자체, 울타리 설치 확대… 정작 천연기념물 산양 이동 막아
5개월 동안 537마리 폐사… 돼지열병은 부산까지 퍼져
“백신 개발 등 대안 찾아야”




《ASF 차단 울타리 실효성 논란


올해 2월에는 근래 보기 드문 대설이 연이어 찾아왔다. 2월 중순부터 3월 초 강원 북부 접경지역 주민과 타지에서 방문한 사람들은 마을과 도로변에서 풀이나 키 작은 나무의 잎을 뜯어 먹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산양’을 너무나 쉽게 발견하곤 놀라워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과 1급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된 국가법적 보호 희귀 야생동물로 평소에는 깊은 산중으로 가지 않으면 여간해선 만나기 어려운 존재다.》








2023년 2월 강원 인제 미시령에서 촬영된 천연기념물 산양. 대설이 내린 뒤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지만 ASF 방역울타리에 가로막혀 더 이동하지 못한 채 서 있다. 야생동물들은 방역울타리를 넘으려다 날카로운 철사에 긁혀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한상훈 소장 제공

산양의 힘든 겨울나기를 더 어렵게 만든 또 하나의 장애가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기 위해 세운 멧돼지 차단 울타리(방역울타리)다. 방역울타리는 동서남북으로 막힘없이 설치되었다. 심지어 산속 임간도로에도 세워졌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환경부가 2019∼2022년 사이 설치한 광역 방역울타리 총길이는 1831km로 강원 지역에만 1179km가 설치돼 있다. 지자체가 설치한 2차 방역울타리까지 포함하면 2806km로 지역에 따라 이중 삼중으로 설치되어 막혀 있는 구간도 적지 않다.

2019년 9월 16일 경기 파주 양돈농가에서 최초로 국내 ASF가 발생하자 정부의 초기 대응은 야생 감염 멧돼지가 양돈농가로 ASF를 퍼뜨리는 걸 차단하기 위해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에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방역울타리를 설치하고, 야생 멧돼지를 집중적으로 포획하여 개체 수를 급감시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전국의 야생 멧돼지 포획 건수는 5배로 급증했다. 마리당 30만∼50만 원의 포획장려금도 지급되었다. 지금까지 방역울타리 설치와 멧돼지 포획장려금 지급에 쓴 예산도 1조 원을 가볍게 넘는다.

방역울타리의 문제점이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환경부는 2022년 10월 19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언론이 지적한 3가지 지적 사항 “①ASF 차단울타리가 군데군데 뚫려 있거나 무너진 곳이 있으며, 규정에 맞지 않게 설치된 곳도 많음(※시방서에는 철망을 땅속 70cm 아래까지 묻도록 되어 있는데…규정 따로, 시공 따로) ②울타리 m당 평균 6만2000원대로 시공, 시중 시공단가 3만 원대보다 2배가량 비싼 금액 ③차단울타리가 멧돼지 이동을 막는 데 별 효과가 없을 것임”에 대해 “우리나라는 울타리 설치 이후에 ASF 확산 속도를 억제하여 양돈농가의 방역대책 추진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 왔고, 지난 3년간 ASF 확산을 중부권 내로 막아내는 효과가 있었음”이라며 거의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상황은 달랐다. 2023년 12월 부산 도심 산에서 ASF 감염 멧돼지 사체가 발견되면서 관리와 차단에 문제점이 없다던 환경부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방역울타리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민원도 그치지 않고 있다. 도로와 하천에 이중 삼중 설치되어 있는 등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불편하며, 심지어 마을 앞을 지나며 설치된 방역울타리가 관리 소홀로 풀로 덮여 있고 파손된 울타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등 마을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더 큰 문제는 멧돼지 이외의 국가보호 야생동물 산양의 이동을 막는 등 생태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점이다. 방역울타리의 구조도 위험하다. 철사가 그대로 뾰족하게 위에 드러나 있어 자칫 야생동물이 뛰어넘다가 실수로 방역울타리에 부딪히면 그대로 살이 파이고 열상을 입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 실제 도로로 나왔다가 차량에 놀란 고라니가 방역울타리를 넘다 노출된 뾰족한 철사 끝에 찔려 상처를 입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처럼 방역울타리는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더욱 조장하기도 한다.

2023년 1월 전국 최초로 인제군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ASF 방역울타리 관내 전수조사를 하여 문제지역 13개소 8.7km를 1차 철거 대상 구간으로 선정하고 구체적 철거 방법을 논의한 뒤 환경부에 요청하였다. 현재 인제 관내에는 환경부가 95억 원을 들여 직접 설치한 212km의 광역 울타리와 인제군이 국도비 35억 원을 투입해 설치한 2차 울타리 71km 등 283km의 방역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접경지역시장군수협의회에서 방역울타리 철거와 발생지역 관리를 재설정하는 안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순간까지 방역울타리가 철거된 지점은 없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23일까지 폐사한 산양의 수는 537마리로 집계됐다. 눈이 완전히 녹은 뒤에는 더 많은 산양 사체가 계속 발견될 것이다. 유럽의 경우 ASF를 1년 만에 종식시킨 국가가 많다. 국내 수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양돈농가 대부분이 영세농가로 위생환경 관리에 매우 취약한 구조가 ASF 감염 확산의 근원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제 ASF 발생 5년 차를 맞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23년 7월 농업농촌개발성 산하 연구기관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ASF 백신의 상업적 이용을 승인하였다. 우리 정부도 백신 개발에 나섰지만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지원 탓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지난 5년간 정부와 연구기관에서 방역울타리에 의존하고 야생 멧돼지 포획 이외에 무엇을 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