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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입구역의 현자(賢者)[소소칼럼]

입력 | 2024-04-09 11:00:00


그는 현자가 아닐지도, 어쩌면 우자이거나 광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서 길 잃었던 내 우문에는 현답을 내놨다.
“석두냐? 네가 바뀌어야 할 문제를 왜 남에게 묻냐” 라고.
확실하게 믿는가.
믿는다면 공부하고,
공부했으면 증명하라.
증명해야 네 것이며,
네 것이면 세상에 베풀라.

누덕누덕 기운 남자의 두루마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둘둘 천을 괴어 머리 위로 올린 팻말이 내게 호통을 친다. 배낭에는 어딘가 잘못된 피카츄와 큼직한 리트리버 강아지, 아이언맨 건틀릿 주먹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건대 로데오거리와 캠퍼스를 오가는 명랑한 20대들과는 사뭇 다른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 그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다.

팻말 구석에 보일듯 말듯 적힌 이름 석 자로 그의 정체를 짐작해볼 뿐이다.



주말 건대입구역에는 현자가 있다?
두툼하고 네모진 글자들이 팻말 위에서 바리톤으로 왕왕 댔다.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들만 가득하다. 팻말 가장자리에도 작은 글씨들이 둘러쳐져 있다.

쩌라구 듣지 말라. 인생의 패배자처럼 보인다.
왜 남에게 쩌라구 묻는가. 석두냐.

‘석두냐, 왜 네 일을 남에게 묻는가, 돌대가리냐… ’ 그의 글씨가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지난번 영화를 보러 왔을 때도, 그보다 더 전에 백화점에 가던 날에도 남자는 저 자리에 있었다. 팻말의 내용은 매번 달라지지만, 누더기 차림새는 그대로다.

그는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저 자리에 서있는 것일까? 다행히 횡단보도의 녹색 불이 켜져 나는 메아리에서 벗어났다. 궁금한 것은 다음 기회로, 일단은 목적지인 영화관을 향해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3년 전 일이다. 이후엔 그를 더 마주치지 못했고, 질문들은 깊은 곳에 묻혀 잊혔다. 그러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쭉쭉 넘기다가 불현듯 스크롤을 멈췄다. 익숙한 바로 그 팻말이었다. “인생은 모두 부업일 뿐….


주변 간판이나 홍보물로 보아 2015년 말 즈음,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서 찍힌 것으로 보였다. 영감을 주는 문구나 사진을 공유하는 계정에 2월 초 올라온 이 사진엔 3만5000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존멋” “개쩐다” “개힙하다”와 같은 직설적 감탄사가 넘실대는 와중에 “대한민국에서 환생한 하이데거”와 같은 댓글도 공감을 얻었다. 그가 사이비 종교인이라는 의혹도 있었다. 갑자기 발동이 걸린 나는 그의 어록(?)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하나둘씩 수집해냈다. 그는 화양동을 벗어나 신촌과 종로, 강남까지 훑고 다닌 모양이었다. 공부와 관련된 문구 중에서도 가장 기막혔던 것은 나 역시 건대 앞을 지나다 본 적 있는 이 문장이다.

“니가 부처나 예수라면 나 같은 놈 구원하겠냐. 공부해 스스로 구원해야 가장 완벽한 구원이다.”


● 나는 자기계발서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자기계발서는 스티븐 코비의 명작을 아들이 청소년 버전으로 다시 쓴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그 책을 닳도록 읽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또래들의 사례들을 보고 또 볼 때마다 나 역시 역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하는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된 뒤에도 한동안은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명쾌한 가르침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례.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계발되고 있다는 자기최면에 빠졌다.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가장 중요한 문제를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실은 그냥 책상머리나 이불 바닥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을 뿐,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도 역경을 넘어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론엔 빠삭해졌지만 정작 나 자신의 행동은 계발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퇴근 후 시간이 남으면 참새 방앗간처럼 회사 앞 교보문고의 종합 베스트셀러 코너를 들러보곤 한다. 자기계발서는 언제나 선반마다 적어도 한 권씩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 최면에라도 빠지고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철저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본다.

작년 이맘때, 서점가를 장악했던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어본 적이 있다. 출판사가 대놓고 전자책을 무료로 공개한 것이 궁금증을 부채질해서다. 홀연히 나타난 익명의 선지자가 미물들에게 기꺼이 내려주시는 공짜 샘물처럼 보였다.

막상 읽어보니 “당신 삶은 당신의 것이다” 류의 독설 모음집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인내심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이 멍청한 놈들아. 이제 내 말을 믿어라” 같은 문장들에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MZ세대 ‘이생망’의 원인은… 그렇다고 한다. ‘세이노의 가르침’ 부분 발췌.


그래 놓고선 얼마 전 베스트셀러 코너를 또 들렀다. 요새는 ‘일류의 조건’이란 책이 새로, 아니, 18년 만에 복간돼 다시 인기인 모양이었다. 소개를 훑어보니 결국 “열심히 배우고 연습해서 숙달하면 성공한다”라는 내용이다. 머리로는 얼추 다 아는, 익숙하고 유익한 교훈이다.

나는 이런 것에 살짝 지친 지가 오래됐다. 좀 더 정확히는, 매번 머리로만 알고 멈춰버리는 나 자신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 사람은 무엇에 감응하는 것일까
그랬던 나를, 우연히 소환된 ‘건대입구역 현자’의 기억이 강타했다. 공부하는 것을 넘어, 증명하는 것마저 넘어, 네 것으로 만든 그것을 세상에 베풀어야 한다고,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떡 버티고 시위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유독 그날의 모습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이 제대로 찔렸기 때문일 것이다.

“석두야”를 외치는 누더기 현자에게는 감응하면서, “멍청한 놈아”를 외치는 세이노에게는 왜 코웃음을 쳤냐고 묻는다면 나도 명확히 말하긴 어렵다. 그는 어쩌면 우자(愚者)이거나 광인(狂人)일지도 모른다. 그가 누구더러 보라고 대로변에서 묵직한 글자들을 이고 지고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자기계발서에서 자기 계발의 답을 찾고자 해왔던 나는, 그의 글자들에서 우문의 현답을 발견한 것 같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을 자꾸 ‘머리로만’ ‘책으로만’ 다시 확인하지 말라는 것 말이다. 오래된 진리나 잘 정립된 이론, 멋들어진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갑자기 마주친 뜬금없는 글자들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는 법이다. ‘뚜벅이’인 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별 목적 없이 그런 것들을 수집하기를 좋아한다.

온라인에서 발굴해낸 그의 문구를 몇 가지 더 공유한다. ‘자기만의 우문현답’의 실마리를 누군가는 찾기를 기원하며.

핀터레스트 계정 ‘Iov3’ 캡처

핀터레스트 ‘grapejellymay’ 캡처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4명의 기자가 돌아가며 씁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