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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언제 병원에 갈까[김지용의 마음처방]

입력 | 2024-04-07 23:36:00


의사들이 가장 큰 아쉬움을 느낄 땐, 병원에 늦게 찾아온 환자를 만날 때다.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마찬가지다.

“좀 쉬거나 운동하면 낫는다고 주위에서 말하더라고요.” “정신과에 가면 무조건 약을 줄 건데, 먹으면 큰일 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말들이 치료 적기를 놓치게 만든다. 모든 우울증에 꼭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기에, 그 기준에 대해 말해 보겠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혈압이나 체온, 혈액 염증 수치처럼 딱 떨어지는 검사 기준으로 우울증을 진단할 수 없는 것이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도 매우 아쉽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총 9가지 기준으로 우울증을 진단한다. 우울감 외에도 흥미나 즐거움의 저하, 수면의 변화, 식욕과 체중의 변화, 기력 저하, 정신 운동 초조나 지연, 과도한 죄책감, 집중력의 감소, 그리고 반복적인 죽음 생각. 이 중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매일같이 지속될 때 주요 우울장애에 해당하며 5개의 경우 경증, 6∼7가지는 중등도, 8∼9가지는 중증으로 진단한다.

주요 우울장애는 흔히들 겪는 일반적 우울감과는 결이 다르다. 일상생활에 분명한 지장을 초래할 때만 진단하는 질병이다. 그렇더라도 경증일 때는 약물 치료 여부를 환자와 같이 논의한다. 실제로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의 진단이 겹치는 경우가 꽤 많고, 이 경우 휴식과 생활 환경 조절을 통해 호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아웃을 유발한 생활 환경이 쉽게 바뀌기 어려운 경우다. 야근이 잦은 회사원, 3교대 간호사, 계속 공부해야만 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충분히 자고, 잘 챙겨 먹고, 운동량도 늘리면서 지내야 한다는 조언은 대부분 공염불이 된다. 그렇게 우울증은 더 진행된다. 그러므로 경과를 보다가 환경 변화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경증이라도 약물의 도움을 받도록 권유한다.

다만 중등도 이상에서는 처음부터 약물치료를 강하게 권유한다. 증상이 많다는 것 자체가 뇌의 다양한 부분에서 기능 저하가 동반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보통 회복도 더 오래 걸린다. 심각도 판단에 있어 증상의 개수가 중요한 기준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죽음에 대한 반복적 생각 같은 경우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엔 너무 위험하다. 그 무엇보다도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주요 우울장애가 의심될 때 약물치료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빠른 호전을 위해서도 있지만, 추후 재발 위험성을 낮추기 위함도 있다. 발목 인대 손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지나가면 추후 작은 충격에도 다시 쉽게 다치는 것처럼, 뇌의 손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울증은 재발할수록 다음 재발 확률이 더 높아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첫 치료 때 6개월 정도 충분한 기간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거듭 말하지만 병원에 간다고 무조건 약물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나의 상태와 환경에 맞춰 가장 필요한 치료를 전문가와 상의하고 결정하게 되니, 부디 편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면 좋겠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