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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美-日-EU-中-印 반도체 보조금 무한경쟁… 입도 못 뗀 韓

입력 | 2024-03-22 00:00: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애리조나주 챈들러의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방문해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인텔에 최대 85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반도체법에 따라 110억 달러(약 14조8000억 원) 규모의 대출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195억 달러, 약 26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보조금과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곧 발표될 예정이지만 규모는 인텔 지원에 못 미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인텔 파운드리 공장을 찾아 직접 발표한 지원 규모는 보조금 85억 달러와 대출 110억 달러다. 예상됐던 지원의 갑절 수준이고, 재작년 제정된 미국 ‘반도체법’ 총지원 규모 527억 달러의 37%다. 여기에 더해 향후 시설·설비 투자의 25%를 법인세에서 깎아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에는 조만간 각각 60억 달러, 50억 달러의 보조금이 지원될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에 지원을 몰아줘 파운드리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미국에서 촉발된 반도체 보조금 전쟁은 이미 국가 대항전으로 번졌다. 반도체 산업 부활을 꿈꾸는 일본은 18조 원의 1차 지원금에 더해 추가 지원금을 준비 중이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62조 원의 민관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은 기존 63조 원의 국가 펀드에 더해 36조 원의 반도체 ‘빅 펀드’를 조성하고 있고, 인도는 13조 원의 보조금을 마련해 자국에 짓는 반도체 공장 건설비를 최대 70%까지 지원한다.

각국이 신(新)보호주의 기조에 올라타 ‘쩐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지만 반도체가 최대 주력산업인 한국은 보조금 무풍지대다. 대기업 특혜 프레임과 재정 사정 때문에 정부는 보조금 논의의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지난해 3월 K칩스법이 통과됐지만 대기업 시설 투자액의 15%를 세금에서 깎아줄 뿐이고, 그마저 올해 말 시효가 끝난다. 여야가 총선을 겨냥해 내놓은 반도체 지원책은 법의 시한을 연장하고 규제를 더 풀어주는 수준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생산 기지가 보조금에 이끌려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양질의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이 반도체를 지렛대로 행사하는 글로벌 영향력은 약화될 공산이 크다. 보조금 지원에 각국 정부가 꼬리표로 붙인 제약들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운신의 폭도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이 더 늦기 전에 경각심을 갖고 실질적 지원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지켜내긴 대단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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