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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하는데”… ‘빅 리그’ 꿈꾸는 여성 야구 심판들

입력 | 2024-03-16 01:40:00

[토요기획] 야구, 여성 심판의 마지막 ‘유리천장’
‘여성 심판 불모지’ 한미일 프로야구… 최근 MLB 스프링캠프 심판진으로
17년 만에 여성 이름 올라 주목… 최초 정식 데뷔 기대감도 ‘모락모락’
한국은 아마추어 야구 김민서 심판뿐
“축구 등 여성 심판 활약 늘어나는 중… 개척자 나오면 다음 세대 줄 이을 것”




《155년 전 오늘(1869년 3월 16일)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현 애틀랜타)가 창단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MLB에는 여성 코치, 여성 단장, 여성 스카우트는 물론이고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TV 중계팀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여성 심판이 MLB 경기 진행을 맡은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MLB만 그런 건 아니다. 한국프로야구도 42년 역사상 심판은 늘 남성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시범경기부터 흔히 ‘로봇심판’이라고 부르는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했다. 23일 정규시즌이 개막하면 인간 여성보다 로봇이 먼저 한국프로야구 1군 심판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일본프로야구 90년 역사에도 여성 심판은 없었다.

북미 4대 프로 스포츠(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야구) 가운데 여성 심판이 없는 것은 야구뿐이다. 남자 축구 무대에서도 여성 심판은 드물지 않은 존재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코스타리카와 독일의 조별리그 E조 경기 심판진을 전원 여성으로 꾸리기도 했다. 유독 야구에서 여성 심판이 이렇게 높디높은 ‘유리천장’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선수보다 어려운 빅리그 도전

11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범경기에서 주심을 맡은 젠 파월. 그는 현재 싱글A 이상 레벨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여성 심판이다. 파월은 MLB 역사상 시범경기에 나선 세 번째 여성 심판이다. 앞선 여성 심판 두 명은 끝내 MLB 무대는 밟지 못했다.

MLB 사무국은 지난달 13일 스프링캠프 심판진 명단을 발표하면서 여성 심판 젠 파월(47)을 포함시켰다. 파월은 MLB 스프링캠프 무대를 밟은 세 번째 여성 심판이다. 파월보다 먼저 스프링캠프까지 도달했던 팸 포스테마(60), 리아 코테시오(48) 심판 모두 ‘더 쇼’(MLB 정식경기)에 초대받지는 못했다.

사실 여성만 MLB 심판이 되는 데 애를 먹는 건 아니다. 미국프로야구에서는 심판도 선수처럼 마이너리그부터 단계를 밟아 MLB까지 올라야 한다. 지난해 MLB 데뷔전을 치른 선수는 261명이었다. MLB 데뷔전을 치른 심판은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MLB 경기에 한 번이라도 출전한 선수는 1457명이지만 심판은 78명이 전부였다.

야구 전문 잡지 ‘베이스볼 아메리카’에 따르면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는 6명 중 1명꼴(17.2%)로 빅리그 무대를 밟는다. 반면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MLB까지 올라가는 심판은 100명 중 3명(3%)에 불과하다. 30대 후반만 되어도 ‘에이징 커브’가 찾아오는 선수와 달리 심판은 30년 경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지난해 MLB 심판 평균 활동 기간은 12.7년이었다.

마이너리그 선수가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면 마이너리그 심판은 ‘눈물에 찢어진 빵’을 먹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많아야 세 번 정도 경기하는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는 시즌 중에는 말 그대로 매일 경기가 열린다. 야구가 ‘일상’이 되다 보니 실제 ‘일상’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일상을 포기하는 대가로 마이너리그 심판은 1900달러(약 250만 원)에서 3500달러(약 460만 원) 사이 월급을 받는다. 이마저 비시즌엔 입금되지 않는다. 길게는 10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하면서 빅리그 심판에 도전해 보겠다는 사람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MLB 사무국이 ‘심판 캠프’를 운영하는 것도 ‘심판 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물론 ‘심판을 하고 싶다’고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수가 그런 것처럼 마이너리그 심판도 시즌이 끝날 때마다 방출 걱정에 시달려야 한다. ‘마이너리그 심판 훈련 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 졸업생 가운데 마이너리그 최고 레벨인 트리플A까지 올라가는 비율은 31%밖에 되지 않는다. 트리플A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평가를 받아야 MLB ‘콜업’을 꿈꿔볼 수 있다.

● 깨지 못한 유리천장


1988년 MLB 역사상 처음으로 스프링캠프 초대장을 받은 여성 심판 팸 포스테마. 그는 1989년 재계약에 실패한 뒤 "내가 빅리그에 가지 못한 건 오직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며 직장 내 성차별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 심판 가운데 처음으로 MLB 스프링캠프 초대장을 받았던 포스테마 심판은 바트 지어마티 당시 MLB 커미셔너에게 응원을 받으면서 MLB 승격을 꿈꿨다. 포스테마 심판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굵게 내고 머리도 짧게 자르는 등 남성 심판 사이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89년 지어마티 커미셔너가 세상을 떠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포스테마 심판은 1989년 시즌 종료 후 트리플A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포스테마 심판은 MLB 사무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신이 MLB 무대에 서지 못한 게 성차별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 1991년에는 ‘빅리그에 들어가려면 고환이 있어야 한다(You’ve Got to Have Balls to Make It in This League)’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펴내면서 “야구를 미국의 게임이라고 하지 말라. 나에게 야구는 ‘미국’이 뜻하는 바와 정확히 반대 의미”라고 주장했다. 포스테마 심판은 소송 제기 5년 뒤 ‘다시는 MLB 산하 기관 심판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 ‘보상금 규모를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두 가지 조건으로 MLB 사무국과 합의했다.

2007년 MLB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은 리아 코테시오.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9년 동안 심판 생활을 했지만 역시 MLB 무대는 밟지 못했다.

두 번째 도전자였던 코테시오 심판도 9년간 마이너리그 생활을 버텼지만 더블A 5년 차였던 200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의 해고 소식이 들린 뒤 ‘남성 심판들의 텃세 때문에 코테시오 심판이 트리플A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송사(訟事)는 없었다.

세 번째 도전자인 파월 심판은 올해로 마이너리그 생활 9년 차다. 파월 심판은 대학 시절까지 소프트볼과 축구 선수로 뛰었으며 2011년에는 미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동했다. 대학원에서 교사 자격증을 딴 파월 심판은 지역 리그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큰 무대’가 주던 희열을 잊지 못했다. 그가 ‘심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파월 심판은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등 아마추어 리그에서 10년간 활동하다가 2015년 MLB 심판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낮은 루키 레벨에 속한 ‘걸프 코스트 리그’에서 심판 생활을 시작해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차례로 거쳤다. 지난해에는 트리플A 챔피언결정전에서 주심을 맡기도 했다.

이제는 파월 심판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팬까지 생겼다. 현재 싱글A 이상 레벨에 한 명밖에 없는 여성 심판인 그는 “모두가 자기 일처럼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할 수 있어요. MLB 최초 여성 심판이 될 테니 계속 힘내세요’라는 응원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 한국 유일 여성 심판 “후배들 도전 응원”

한국 4대 프로 스포츠(농구, 배구, 야구, 축구) 가운데서도 야구에만 여성 심판이 없다.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도 야구 파트 여성 심판은 김민서 심판(39) 한 명뿐이다. 리틀야구(1명)와 여자 야구(2명)를 합쳐도 국내 여성 야구 심판은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하는 수준이다.

스쿼시 주니어 국가대표 출신인 김 심판은 2010년 KBO가 명지전문대와 함께 운영하는 ‘심판 학교’에 조교로 입사했다. 그러다 2013년 조교가 아니라 학생으로 심판 학교에 참가해 최종 합격자 8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 심판은 202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주심을 맡았다. 한국 고교야구 4대 메이저 대회(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기, 봉황기) 결승전에서 여성 심판이 주심을 맡은 건 김 심판이 처음이었다.

현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야구 심판 파트에 등록된 유일한 여성인 김민서 심판. 그는 "프로야구 1호 여성 심판에 도전하는 여성 후보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김 심판은 “야구 심판은 어느 위치에서든 야구에 계속 속해 있고 싶은 사람들”이라며 “나도 오랜 LG 팬으로 원래부터 야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구 심판은 아웃·세이프, 파울·페어, 볼·스트라이크 판정만 잘한다고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오심에 대한 부담, 좁은 야구계 안에서의 (인간) 관계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저 ‘야구가 너무 좋다’는 마음이 아니면 버틸 재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 심판은 유독 야구에서 여성 심판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에 대해 “야구를 직접 해본 여성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 심판은 “야구 심판이 되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런데 야구를 직접 해보지 않은 경우에는 1루에서 아웃·세이프 판정을 내리는 걸 비롯해 선수들의 순간 스피드에 적응하고 따라가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못 버티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계속해 “프로 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연습 게임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 경기를 보면서 ‘내가 지금 프로 1군 선수들 플레이를 잘 판정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오래 준다면 당연히 한계를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너그럽게 기다려 주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심판은 “축구도 움직임이 많은 스포츠인데 최근 여성 심판들 활약이 늘어나지 않았나. 개척자가 생기면 그걸 보고 따라오는 다음 세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야구는 아직 그 문턱을 넘어본 사람이 없어서 유독 더 느린 것 같다”면서 “객관적으로 내 능력으로 프로야구 심판은 무리다. 하지만 프로야구 1호 여성 심판에 도전하겠다는 분이 나오면 도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